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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나 유적

다른 표기 언어 Tell el-Amarna

요약 상이집트 지방에 있던 고대도시 아케타톤(아톤의 지평선)의 폐허와 무덤 유적지.
Tall alAmarna, Tel el-Amarna라고도 씀.

알미니아 주의 아시우트에서 북쪽으로 71㎞ 떨어져 있다. BC 1375년경 아크나톤(아멘호테프 4세)이 아몬 신을 버리고 아톤 신에 헌신하기로 결정한 후 나일 강 동쪽 기슭의 미개척지에 왕국의 새 수도로 이 도시를 건설했다.

아크나톤이 죽자(BC 1360경), 약 4년 후 왕실은 테베로 옮겨지고 이 도시는 버려졌다. 존속 기간은 짧았지만 아케타톤은 이집트의 고대도시 중 신중하게 발굴된 몇 안 되는 도시이다. 아크나톤이 미개척지를 수도로 택했고 그곳에 사람이 거주한 기간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발굴자들은 이 도시의 설계도를 정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아케타톤의 중요한 건물들은 왕도의 양쪽으로 늘어섰는데, 가장 큰 건물은 아톤 대사원이다. 이 대사원은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연이어 있고 끝에 완전 노천식의 본당 신전이 있는 양식으로 되어 있다. 대사원 부근에 왕궁과 왕가의 넓은 저택이 있었다. 텔엘아마르나에 세워진 주택들은 대부분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과 담벽 및 마루로 되어 있었고, 방들 가운데는 천장에 생생한 자연주의 화풍의 그림이 그려진 방이 많았다. 집집마다 사당이 있고, 아크나톤 가족의 사생활을 묘사한 비문이 새겨진 돌기둥이 있었다.

고고학상의 다른 중요한 발견물들 가운데는 조각가 투트모세의 집에 있던 네페르티티 왕비의 반신상과 1887년에 한 시골 아낙이 우연히 발견한 300개의 설형문자판이 있다. 이 문자판들로 말미암아 제18왕조 후반 이집트 제국의 쇠퇴를 더듬어볼 수 있게 되었다. 아케타톤에 있던 귀족의 별장들은 테베와는 달리 단층건물이었으나, 거실 중앙의 천장을 집의 나머지 부분보다 높게 하여 천창을 통해 채광과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노동자들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간단한 구조의 집에서 살았다.

관리들의 무덤은 동쪽에 있는 사막의 언덕을 뚫어 조성되었는데, 테베의 것들과 비슷하다. 묘당 안의 채색부조들은 더러 급조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아크나톤의 일상생활과 종교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되어왔다. 또한 도시의 여러 건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묘실벽화들은 발굴자들이 흔히 미완성으로 남은 건축의 유적들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부조들은 자유롭고 과장된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이전의 이집트 예술을 특징지었던 정적인 분위기보다는 찰나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아크나톤과 그의 가족들의 무덤은 시의 동쪽에 있는 물이 마른 강바닥 가장자리에 조성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전례가 없는 풍경화 1폭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왕실의 가족이 그곳에 매장된 메케타톤 공주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1890년대와 1970년대 말엽의 발굴에서는 아크나톤이 일부러 박살낸 돌널[石棺]의 파편들과 깨진 수많은 우샵티(ushabti:부장된 노예의 작은 상)가 출토되었다.

투탄카멘이 왕궁을 테베로 이전할 때 그는 왕묘를 테베의 공동묘지로 옮겼다. 그 공동묘지의 왕족 미라를 숨겨두는 장소에서 스멘크카레와 티이 왕비의 미라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아크나톤의 미라도 발견되었다. 도시는 유기된 후 호렘헵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람세스 2세는 사원들을 쌓았던 돌덩이들을 인근의 헤르모폴리스에서 벌인 역사에 재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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