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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9, 이집트 카이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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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팔레스타인 |
요약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장이다. 평생 동안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과 외교적 노력을 해왔고, 1994년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59년부터 무장조직에 직접 참여하여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이스라엘에 투쟁했고, 중동전 때는 450여 명의 부대로 그 30배가 넘는 이스라엘군을 격파했다. 1968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이 된 후 혁명군의 최고사령관까지 되었고,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 사건 등 국제적 테러를 시도하여 악명을 얻었다. 그러나 1988년 UN 임시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했다. 그 후 1994년 이스라엘과 협정을 체결해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받으며 중동에 평화를 가져왔고, 이 공로를 인정 받아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초대 자치정부 수장으로 선출되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1968∼)이자 PLO내 최대 조직인 파타(FATAH)의 지도자이다.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예루살렘의 반시온주의 이슬람 율법가인 아민 알 후세이니(1974죽음)의 친척이었다. 이집트의 카이로대학교를 졸업, 토목기사가 되었고 1952∼56년 '팔레스타인 학생연합' 회장을 지냈다. 이집트군 장교로 임관되어 1956년 수에즈 전투에 참가한 후 쿠웨이트로 건너가서는 '자유팔레스타인 건설회사'를 세워 무장투쟁의 자금을 지원했고, 1959년 동료들과 함께 PLO의 모태가 된 무장조직 파타의 결성에 참여했다. 무장게릴라를 이끌며 1960년대 70여 회에 걸쳐 이스라엘의 주요시설 파괴작전을 성공시켜 명성을 높였던 그는 1967년 중동전 때는 45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1만 5,000명의 이스라엘군을 격파했다.
1968년 PLO의 의장이 된 후 1971년 '팔레스타인 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이 되었고 2년 후에는 PLO 정치분과위원장까지 겸하면서 항공기 납치, 1972년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 등으로 국제적인 테러조직의 지도자로 악명을 얻게 되었지만, 아라파트는 테러와 함께 외교에도 능했다. 1974년 11월 그는 처음으로 비정부조직인 PLO의 대표로서 국제연합(UN) 정기총회에 참석, "나는 한손에는 권총(전쟁)을, 다른 손에는 올리브가지(평화)를 들고 있다. 내손에서 올리브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으며, 1988년 제네바에서 열린 UN 임시총회에서는 이스라엘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 중동 평화 정착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이 공로로 이스라엘의 Y. 라빈, S. 페레스와 함께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그해 7월엔 27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어 1996년 4월 20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의 전단계로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에서 의회의 과반수를 획득하여 초대 자치정부 수반에 올랐다(→ 팔레스타인의 자치 확대에 관한 원칙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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