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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세기 칠레의 아라우칸 원주민과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분쟁과 19세기 아라우칸인과 독립한 칠레 사이에 있었던 전투.
아라우칸인은 마푸체족과 피쿤체족, 우이이체족의 3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유목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3개 부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치 문화적인 통합은 거의 없었다. 아라우칸인은 잉카 이전 문화와 잉카 제국 문화의 영향을 다소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잉카 제국 사람들은 그들을 정복하지 못했다.
스페인인들은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원정대가 남쪽에 있는 칠레 지역을 침입했을 때인 1536년경에 아라우칸인과 최초로 충돌했다. 1541년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군대가 칠레 중부 지역을 정복하고 산티아고를 세웠을 때 그들은 아라우칸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1550년 발디비아는 남쪽으로 돌진해 비오비오 강 어귀에 콘셉시온을 세웠다. 그러나 1553년에 발디비아와 그의 군대는, 전에 발디비아의 군대에서 2년간 복무했던 라우타로가 이끄는 아라우칸인에게 패배했다. 군대를 탈출하기 전에 라우타로는 스페인어와 전술을 배웠으며 화약을 제조하고 사용하는 방법까지 배운 것으로 여겨진다.
발디비아 군대를 무찌른 뒤 아라우칸인은 가까스로 산티아고를 장악했다. 그러나 라우타로가 전장에서 전사하고 원주민들 사이에 천연두가 유행하면서 산티아고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또 다른 지도자였던 카우폴리칸이 전투를 계속 진행했으나 1558년에 반역 행위로 체포되어 스페인인에게 처형당했다. 그 후 스페인인은 마푸체족을 비오비오 강 남쪽의 삼림 지역으로 몰아넣었다. 비오비오 강은 이어진 3세기 동안 두 부족 간의 경계로 남았다.
17세기가 끝나기 전에 스페인인은 피쿤체족을 격퇴하고 흡수했으며 우이이체족은 칠레의 지배적인 인종인 메스티소로 흡수되었다. 19세기에 칠레인은 태평양 전쟁(1879~84)에서 페루와 볼리비아 영토의 일부를 합병한 뒤 남쪽에 잔류했던 아라우칸인을 정복했다. 아라우칸인은 1840년대 후반에 그곳에 정착한 독일계 부락을 급습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유럽인이 팽창하지 못하도록 했다. 칠레군에 패배한 뒤 아라우칸인은 칠레 정부와 협정을 맺고 먼 남쪽 지역에 있는 보호구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라우칸인은 다른 지역민들과 떨어져 지냈다.
아라우칸 전쟁에서 싸웠던 스페인의 군인인 알폰소 데 에르시야 이 수니가는 서사시 〈라 아라우카나 La Araucana〉(1569~89)를 통해 아라우카인들의 용기와 공훈을 찬양했다. 이 작품은 '칠레의 아이네이스'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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