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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5. 11. 1,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아이벤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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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1. 2. 15, 빈 |
국적 | 오스트리아 |
요약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음악교육자.
근대 음악학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864년 아들러의 가족은 빈으로 이주했으며 4년 후 그는 빈 음악원에서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에게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법조계에서 일하려고 빈대학교에 입학하여 1878년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이 대학교에서 바그너에 대한 일련의 강의(1904년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라는 책으로 출판됨)를 했으며 펠릭스 모틀과 함께 바그너 학회(Akademischer Wagnerverein)를 설립했다. 음악사 분야에서 뛰어난 동시대인들의 영향을 받았던 아들러는 음악사 연구를 위해 법률을 포기했다.
그는 1600년 이전의 서양음악에 대한 논문을 써서 188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다음해에는 화성의 역사를 강의하는 전임강사가 되었다. 1884년 필리프 슈피타와 K. F. F. 크리잔더의 협조로 〈음악학 계간지 Viertel-jahrs-schrift für Musikwissenschaft〉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다음해 프라하에 있는 독일대학교에서 음악학교수가 되었다. 1888년 그는 오스트리아 정부에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음악을 책으로 출판하도록 요청했다. 이 계획안은 〈오스트리아 음악의 업적 Denkmäler der Tonkunst in Österreich〉이 출판됨으로써 실현되었으며, 아들러는 1894~1938년 편집 책임자로 일하면서 130권 이상의 시리즈 중 83권을 출판했다.
1892년 그는 빈에 있는 '국제음악연극공연중앙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898년 빈대학교의 음악사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 음악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그의 강의는 인기가 있었으며, 유럽 각지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나중에 작곡가나 음악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음악사 이외에 현대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구스타프 말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16년에는 말러에 관한 책을 출판했으며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초창기 음악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19세기말에 시작된 새로운 음악학의 학문적 훈련을 위한 주요원칙과 방법들을 명료화한 그는 양식 비평과 연구를 강조한 최초의 음악사가였다. 음악학에 대한 그의 입장은 1924년부터 편집에 참여했던 〈음악사 편람 Handbuch der Musikgeschichte〉에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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