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40. 6. 13, 갈리아나르보넨시스 포룸율리 |
---|---|
사망 | 93. 8. 23 |
국적 | 로마 |
요약 로마의 장군.
브리튼 정복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사위인 역사가 타키투스는 아그리콜라의 생애에 대한 기술을 남겼다.
브리튼 총독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휘하에서 군사 호민관(트리부누스 밀리툼)을 지낸(59~61) 뒤 아시아 속주의 콰이스토르(재무관), 평민 호민관(66)을 거쳐 68년에는 프라이토르(법무관)직을 역임했다. 69년의 내란 때에는 베스파시아누스의 편에 섰고 베스파시아누스는 그를 브리튼 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로마로 돌아온 해(73)에 파트리키(귀족) 신분에 올랐고 아퀴타니아 총독(74~77)을 지냈다. 77년에는 콘술(집정관)에 임명되어 브리튼 총독을 지냈다.
브리튼에 있을 때(77/78~84) 아그리콜라는 모나 섬(지금의 앵글시)을 포함한 웨일스의 일부를 정복한 뒤 지금의 북부 잉글랜드에 해당하는 지역을 전부 손에 넣었다. 또 스코틀랜드로 진격해 클로타(클라이드)·보도트리아(포스) 강의 하구 사이에 임시 국경 푯말을 세우기도 했다. 83년 로마군은 포스 강을 건너 몬스그라우피우스 전투에서 칼레도니아인들을 격파했다.
아그리콜라는 스코틀랜드의 고원지대 주변까지 점령했으며 고원지대 주변에 망루를 세워 고갯길을 막고 잉크투틸(퍼스셔에 있는 던켈드 근처)에 군단 요새를 두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승리를 거둔 뒤 로마로 돌아갔으며 아시아의 프로콘술직을 사양하고 은퇴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