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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구

다른 표기 언어 申鉉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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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2, 충남 논산
사망 1931
국적 한국

요약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경기도 고양군 용강 자택에서 혼자 독립선언서를 인쇄·배부하여 향리의 사람들을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시켰다.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을 돕기 위해 자금조달운동을 전개하고,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아 권인채(權仁采) 등과 함께 비밀리에 대한독립애국단을 조직하여 서울에 본부를 두었다. 또한 권인채를 통하여 김상덕(金相德)으로 하여금 철원으로 내려가서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지부를 조직하게 했다. 그는 이것을 강원도단으로 인정하고, 임시정부 명의로 도단장에 이봉하(李鳳夏), 서무국장에 강대려, 재무국장에 김완호(金完鎬), 통신국장에 박연서(朴淵瑞), 학무국장에 박건병(朴健秉), 외교국장에 김철회(金喆會)·이용우(李用雨)를 임명하고 사령장을 발급하면서 각 군단·면단을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그뒤 충청남도에도 지부를 설치했다.

1919년 6월 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연(金泰淵)을 만나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단체 사이에 연락을 더욱 긴밀히 하고, 운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애국단 산하단체를 통해 연통제를 실시할 것과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혈성단을 조직하기로 결의했으며, 김태연으로 하여금 김순호(金順浩)·김교선(金敎善) 등과 합작하게 했다. 같은 해 11월 종로 5가 김교선의 집에서 혈성단을 조직했다.

임시정부의 초청을 받아 상하이[上海]로 떠나기 직전 일경에 체포되어 5년의 옥고를 치렀고, 1927년 잡지 〈심경 心鏡〉에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논문을 실었다가 다시 체포되어 3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복역중 병을 얻어 병보석으로 출감한 지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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