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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 기예능보유자.
본관은 영월(寧越).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선(佑善)이다. 유년 시절은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에 있는 증조부 재영(在榮)의 슬하에서 보냈는데, 당시 증조부는 삭녕면 일대의 대지주로 한량·재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호걸이었다.
특히 택견을 잘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맞서기(겨루기)를 시켜 우승자에게는 푸짐한 상을 주는 한편, 술과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그들과 재담을 즐겼다. 이러한 종조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태껸을 배우고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었다. 그 뒤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옮겨가 이민생활을 하면서 1944년 사평(四平) 산성진국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9년 신흥대학(지금의 경희대학교) 체육과에 입학하여 1951년 수료하기까지 레슬링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뒤 충주로 내려와 유도에 몰두했으나, 1961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자 어렸을 때 보고 익혔던 태껸의 원형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태껸의 명인들을 찾았다. 1970년 송덕기(宋德基)를 만나 태껸에 관한 기술을 전수받는 한편, 태껸에 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기 시작했다.
1973년 10월 충주에 태껸전수도장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태껸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1981년 11월 그동안 정리한 태껸 관련 자료를 문화재관리국에 제출하여 인멸될 위기에 있는 태껸을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1983년 6월 1일 태껸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송덕기와 함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는데, 이는 무술 분야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셈이다.
그 뒤에도 태껸의 보급과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1984년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식후 공개 행사로 태껸을 발표했고, 1987년에는 태껸 전수생 이수자격 평가 공개발표회를 가졌다. 한편, 태껸과 운동의 원리가 비슷하다고 하여 구전되고 있는 전통무예 수벽치기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다.
1997년 충주에 전통무예 태껸의 보존·보급·발전을 위한 태껸전수관이 건립되었다. 신한승이 태껸 전수활동에 매진하고,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 주로 활동했던 곳이 충주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태껸전수관이 건립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충주시는 태껸의 세계화를 위해 1998년부터 해마다 10월에 세계무술축제를 열고 있다.
2008년 제11회 세계무술축제에는 15개국 30여 팀이 참여하여 각 나라의 무예를 선보인 바 있다. 태껸전수관은 2008년 현재 충주시가 직접 운영하며 중요무형문화재 태껸 2대 보유자인 정경화가 관장을 맡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뿌리로 한 선비정신인 '참'을 찾아야 된다고 역설한 신한승은, 근세 태껸의 마지막 전승자이며 현대 태껸 중흥의 중시조로서 태껸 정립의 외길에 평생을 바친 무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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