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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750년(경덕왕 9) 이후 당나라와 신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신라인들이 중국 산둥반도 남쪽의 해안 일대와 화이허 강 하류에 이르는 지역에 신라인 촌락을 형성하여 살았다. 이 가운데 상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주로 추저우와 롄수이 등의 도시에 모여 살았는데, 당에서는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신라방'이라 하여 자치를 허용해주었다.
이곳에는 '구당신라소'라는 관청이 있었으며, 그곳의 장인 총관이 행정을 관장했다. 이곳에는 장보고가 세운 신라 사원인 법화원이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고, 일부는 그와 관계된 수부나 공인으로 생활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또한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국제무역을 활발히 전개했는데, 양저우, 쑤저우 등지를 중심으로 아랍 및 폐르시아 상인들과도 교역했고, 일본과 신라 본국을 왕래하면서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750년(경덕왕 9) 이후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면서 두 나라 사이에 교역이 활발해지고, 많은 신라인들이 당에 가서 거주했다. 그들은 신라와 해상교통이 빈번했던 산둥[山東] 반도 남쪽의 해안 일대와 화이허 강[淮河] 하류에 이르는 지역에 주로 거주하면서 신라인 촌락을 형성했다. 이 가운데 상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주로 추저우[楚州]와 롄수이[漣水] 등의 도시에 모여 살았는데, 당에서는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신라방'이라 하여 자치를 허용해주었다. 이곳에는 '구당신라소'라는 관청이 있었으며, 그곳의 장(長)인 총관이 행정을 관장했다. 그 아래에 교섭업무를 주관하는 역어와 전지관이라는 관리가 있어 신라인과 관련된 사무를 전담했다.
한편 산둥 성[山東省] 원덩 현[文登縣] 칭닝 향[淸寧鄕] 츠산 촌[赤山村]의 신라인 통할 관청인 구당신라소의 장은 압아라 하여 추저우와 롄수이에 있는 신라소의 장을 총관이라 한 것과는 다르게 불렀다. 그러나 압아가 총관과 거의 대등한 위계를 가졌으므로 그들은 같은 지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장보고(張保皐)가 세운 신라 사원인 법화원이 있었다. 이 사원에는 승려 42명과 비구니 3명, 노파 2명이 항상 거주하고 있었고, 신라인 신도가 250명에 이르렀다. 신라방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고, 일부는 그와 관계된 수부나 공인으로 생활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국제무역을 활발히 전개했는데, 양저우[揚州]·밍저우[明州]·쑤저우[蘇州] 등지를 중심으로 아랍·폐르시아 상인들과도 교역했고, 일본과 신라 본국을 왕래하면서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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