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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89(태조왕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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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9(신대왕 15) |
국적 | 고구려, 한국 |
재위 | 165년~179년 |
요약 고구려의 제8대 왕으로, 이름은 백고 혹은 백구. <삼국사기>에서는 차대왕이 명림답부에 의해 살해당한 뒤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고 전해지나, <삼국유사>에서는 신대왕이 차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신대왕은 좌우보제를 국상제로 바꾸어 명림답부를 국상에 임명하였으며,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를 곤고히 하였다.
고구려의 제8대 왕. 이름은 백고(伯固) 혹은 백구(伯句)이다. <삼국사기>에는 태조왕의 동생으로, <후한서(後漢書)>에는 차대왕의 아들로 나온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둘째 형인 차대왕이 포학하여 신민이 따르지 않자, 해를 당할까 두려워 산곡으로 도망했다가 왕이 명림답부(明臨答夫)에 의해 살해당한 뒤 좌보(左輔) 어지류 등 여러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차대왕이 백고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나온다.
166년(신대왕 2)에 차대왕의 태자 추안(鄒安)을 양국군(讓國君)으로 봉하고, 구산뢰(狗山瀨)와 누두곡(婁豆谷) 2곳을 식읍으로 주어 반대세력을 무마했다. 그해에 명림답부를 국상에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관계의 일을 맡겼으며 양맥부락(梁貊部落)을 통솔하게 했다. 이때부터 좌우보제(左右輔制)가 국상제로 바뀌었다.
168년 한나라 현도군 태수 경림(耿臨)이 변방을 침공해 수백 명을 죽이자 항복했다. 그 다음해에는 대가 우거(優居)와 주부(主簿) 연인(然人) 등으로 하여금 현도군 태수를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토벌하게 했다. 그러나 172년 한나라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성을 견고하게 지키면서 지연작전을 쓰다가 그들이 지친 틈을 타 기습해 크게 승리했다. 이때 전공을 세운 명림답부에게 좌원(坐原)과 질산(質山) 두 곳을 식읍으로 주었다. 죽은 뒤 고국곡(故國谷)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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