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미국의 변호사이자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
Ted Sorensen이라고도 함.
1961~63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로 실세 집단의 조언자이자 특별 고문, 대통령 연설문 기고자로 활동했다. 국민들에게 했던 케네디의 연설 중 가장 고무적이고 기억에 남을 만한 연설문의 기초를 작성한 공적으로 유명하다.
네브래스카대학교에서 이학사 학위(1949)와 법학사 학위(1951)을 취득한 후 1953~61년 매사추세츠 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케네디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8명의 위대한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저서 〈용기 있는 사람들 Profiles in Courage〉(1956)로 케네디가 195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이 바로 이 당시였다.
케네디가 이 책의 원고를 쓸 당시 소렌슨이 상당 부분 글쓰기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소렌슨은 자신이 했던 일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1962년 쿠바의 미사일 위기 확산 당시라고 밝혔다. 그 당시 미국 법무장관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에게 보낼 서한을 매우 공들여 작성했다. 그 서한으로 인해 쿠바에 핵무기 미사일을 설치했던 소련과 미국 간의 핵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다.
소렌슨은 1960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케네디 대통령과 단단한 관계를 구축했다. 두 사람은 함께 50개에 달하는 미국의 모든 주를 방문했다. 학구적인 소렌슨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케네디는 국가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꿈과 자기 희생, 공익사업에 대한 요구에 있어서 생각이 같았다. 소렌슨이 글쓰기 기술을 갈고 닦는 동안 케네디는 웅변술을 향상시켰다. 케네디가 미국인들에게 "나라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요구하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라"고 강력히 피력했던 취임 연설은 현대 웅변술의 기준으로 평가받았다.
1963년 11월 케네디가 암살된 후 소렌슨은 잠시 린든 B. 존슨 행정부에 남았다가 1964년 은퇴했다. 1970년 소렌슨은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 공석이 된 뉴욕 상원 의석에 입후보했다. 그러나 케네디가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는 선거에 패배했다. 비록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미국중앙정보국(CIA) 국장 발탁을 수락했지만 젊은 시절 소렌슨이 양심적 병역 거부의 견해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지명은 철회되었다.
소렌슨은 폴와이즈(Paul, Weiss, Rifkind, Wharton & Garrison) 법률회사에서 국제 변호사로 일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와 이집트의 안와르 엘 사다트 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소송을 담당했다. 저서로는 〈백악관의 정책 결정 과정 Decision Making in the White House〉(1963)을 비롯해서 〈케네디가의 유산 The Kennedy Legacy〉(1969), 〈Watchmen in the Night: Presidential Accountability After Watergate〉(1975) 등이 있다. 2008년에 자서전 〈Counselor: A Life at the Edge of History〉가 출간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법률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시어도어 챌킨 소렌슨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