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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

다른 표기 언어 Shibusawa Ei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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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0. 3. 16, 일본 무사시 구니[武&cj005f;國]
사망 1931. 11. 11, 도쿄[東京]
국적 일본

요약 일본의 실업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에 정부 관리로 있으면서 개혁정책을 수립하여 일본 경제를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시부사와회사를 세워 일본에서 가장 큰 재벌의 하나로 키움으로써 정부와 기업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기여했다. 시부사와의 부모는 농민이었지만 그에게 좋은 교육을 베풀 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는 한때 모든 외국인을 일본에서 내쫓을 것을 요구하는 '양이'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한 히토쓰바시[一橋] 가문의 상속자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를 받들게 되었다. 요시노부는 그를 사무라이 신분으로 끌어올렸으며, 얼마 후 일본의 세습 군사 독재자인 쇼군[將軍]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자 시부사와를 바쿠후 관리로 임명했다.

시부사와는 곧 '양이' 사상을 버렸고, 1867년 1월에 요시노부의 동생을 수행하여 유럽을 순방했다. 그가 귀국했을 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쇼군의 바쿠후가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뒤였다. 그해에 시부사와가 설립한 금융무역상사는 법인 조직을 가진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1869년 10월에는 대장성(재무부) 관리로 정부에 들어가 조세와 화폐를 개혁하고 도량형 제도를 개정했으며, 새로운 지방 행정법을 개발하는 데 이바지했다.

1873년에 시부사와는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직하고, 일본제일국립은행(지금의 다이이치칸교은행)의 설립을 도와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오지[王子]제지회사를 설립했고, 10년 뒤에는 유명한 오사카[大阪]방직회사를 세워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방직회사보다 규모가 크고 효율적인 이 공장을 통하여 일본 실업계의 거물로 등장했다. 실제로 철도 및 기선회사, 수산회사, 인쇄소, 철강공장, 가스 및 전기회사, 석유 및 광산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당시 일본의 산업 발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업활동에 관여했다. 1916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는 91세로 죽을 때까지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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