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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334경, 이탈리아 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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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399. 11. 26, 로마 |
요약 교황(384~399 재위).
축일은 11월 26일.
교황 리베리오가 시리치오를 부제로 임명했으며, 384년에 교황 다마소 1세의 계승자로 선출되었다. 그의 유명한 교서들(잔존하는 로마 교황의 교령집들의 시초)은 특히 종교적인 고행에 초점을 맞추어 세례, 봉헌, 서품, 고해성사, 금욕에 관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386년에 타라고나의 히메리우스 주교에게 써서 보낸 시리치오의 중요한 교서는 성직자의 금욕을 요구했다. 그 일은 이 주제에 대한 첫번째 포고였으며, 교황 레오 1세의 교황 임기(440~461)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시리치오는 교령들을 위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제재 위협을 하며 그의 교령집과 더불어 교황의 권위를 의미심장하게 역설했다. 그의 칙서들은 교황을 전체 서방교회의 군주로 칭했으며 그는 그 내용을 포함한 법률을 만들었다. 또한 어떠한 주교도 사도좌의 지식 없이는 임명될 수 없다고 포고했다.
게다가 시리치오는 자신이 동방교회의 일에 개입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의 요청으로 그는 안티오키아의 주교직을 두고 발생한 분쟁과 관련된 복잡한 상황에 놓인 멜레티아누스 분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플라비아누스 1세를 합법적인 안티오키아 주교로 승인하기 위해 393년에 카이사레아 공의회에 내린 그의 지시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분열을 끝내게 했다. 그는 394년에 보스라의 주교직을 두고 아라비아 교회 내에서 일어난 분쟁을 중재했다.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글은 그 교회에 바친 시리치오의 봉헌(390)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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