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529. 7. 20 |
---|---|
사망 | 1586. 5. 5., 잉글랜드 슈롭셔 러들로 |
국적 | 아일랜드 |
요약 잉글랜드 태생 아일랜드의 총독(1565~71, 1575~78).
아일랜드에 잉글랜드의 법과 관습을 강요하는 엘리자베스 1세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수행해나갔다. 그의 부친 윌리엄 시드니 경은 국왕 헨리 8세의 궁정신하였다. 시드니는 어린 왕 에드워드 6세의 총신이 되었으며 1550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556~59년 아일랜드 총독으로 있던 그의 매부 토머스 래드클리프(나중에 서식스 백작 3세) 밑에서 아일랜드 재무부차관에 임명되었다. 1565년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아일랜드 총독에 임명된 그는 막강한 셰인 오닐이 주도하는 얼스터의 대규모 반란에 직면했다. 오닐의 반군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실패한 후 그의 정적인 터코널의 오도널 가문과 앤트림의 맥도널 가문을 이용해 오닐에 대한 음모를 꾸몄고 마침내 오닐은 1567년 맥도널가 사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시드니는 아직 얼스터의 토착세력을 완전히 제압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그는 많은 토착세력을 설득해 엘리자베스 여왕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했으며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먼스터와 코노트에 잉글랜드인 지사를 취임시켰다. 또한 1569~71년의 아일랜드 의회에 반(反)로마 가톨릭 법안이 제출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제임스 피츠모리스 피츠제럴드가 지휘하는 먼스터 가톨릭교도의 반란을 봉쇄하고 결국 진압했다(1573). 여왕이 충분하게 군사력을 지원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1571년 사임했으나, 4년 뒤에 다시 아일랜드 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혹독한 세금을 징수해 국민들의 원성을 샀고 이때문에 1578년 소환당했다. 그뒤 웨일스와 마치스의 참사원 의장으로만 활동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