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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92경, 네덜란드 프리슬란트 스헤르펜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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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72. 2, 미국 뉴욕 시 근처 |
국적 | 네덜란드 |
요약
네덜란드령 식민지의 총독.
(영). Peter Stuyvesant.
영국의 뉴욕 점령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칼뱅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632년경에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643년에는 이 회사의 식민지인 쿠라사오와 아루바 및 보네르 섬을 담당하게 되었다.
포르투갈령 생마르탱 섬 원정중에 그는 오른쪽 다리에 중상을 입어 다리를 잘라내고 이때부터 목제의족을 달고 다녔다. 1645년에 그는 북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에 있는 모든 네덜란드 속령의 총독이 되었다. 1647년 뉴암스테르탐(나중에 뉴욕 시)에 도착하자마자 이 도시 주민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의 통치 방식은 너무 독재적이었고 서인도회사의 이익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시민들이 자치를 요구하자 그와 의회는 1647년에 9명의 자문위원을 임명했고, 1653년에는 뉴암스테르담 시에 네덜란드의 시들을 본뜬 최초의 지방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는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토이베산트는 그후에도 계속 자치정부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1650년에 뉴네덜란드와 코네티컷 사이의 경계선을 결정할 때, 그는 많은 영토를 희생했다. 그러나 그는 델라웨어 강 연안의 네덜란드 영토에 살고 있는 스웨덴인들을 정착촌에서 몰아내고 그곳에 사는 인디언 원주민과 평화 협정을 맺는 데 성공했다. 1664년 8월 자치도시 주민들이 그를 돕기를 거부하여 스토이베산트는 뉴네덜란드를 영국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역사가들에 따르면 서인도회사는 회사 정책의 실수를 그의 탓으로 돌려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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