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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4. 2. 3, 미국 펜실베이니아 앨러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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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6. 7. 27, 프랑스 파리 |
국적 | 미국 |
요약 20세기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작품 수집가. 대표 저서로는 <세 사람의 생애>, <앨리스 B. 토클러스의 자서전>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재산을 물려받아 파리로 갔다. 그녀의 파리 자택은 세계대전 동안 예술가들의 살롱으로 사용되었고, 그녀는 입체파 화가들과 실험적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1920년대 파리를 문학활동으로 중심지로 삼았던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을 지원하고, 파리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작품 수집가. 유년은 빈과 파리에서, 소녀시절은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 보냈다.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함께 심리학을 공부했다. 존스홉킨스의과대학에서 공부를 더 한 뒤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물려받아 파리로 갔다. 1903~12년 남동생 리오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미술비평가로 성공했다. 그후에는 평생의 동반자가 된 앨리스 B. 토클러스(1877~1967)와 함께 살았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파리 자택은 제1·2차 세계대전 동안 주요 예술가와 작가들이 어울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잃어버린 세대)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녀의 남동생은 파블로 피카소(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주었음),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 같은 당대의 입체파 화가 및 다른 실험적 화가들의 작품을 최초로 수집했다. 이 화가들 중 몇몇은 스타인의 친구가 되었고, 그녀의 살롱에서 셔우드 앤더슨,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미국인 이주작가들과 그녀의 문학적 명성을 듣고 찾아온 방문객들과 어울렸다. 스타인의 문학적·예술적 판단이 매우 존중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다른 예술가의 명성을 좌우했다.
거트루드 스타인 자신의 작품에서도 입체파의 이론에 따라, 특히 현재의 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거의 변화 없는 반복, 극단적인 단순화·파편화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스타인의 창작이론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서는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을 1926년 단행본으로 엮어낸 평론집 〈작문과 해설 Composition and Explanation〉이다. 입체파의 영향을 가장 철저하게 받은 작품은 〈부드러운 단추 Tender Buttons〉(1914)인데, 여기서는 파편화와 추상화가 너무 지나쳐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최초로 출판한 책으로 3명의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세 사람의 생애 Three Lives〉(1909)는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1906~08년에 비로소 출판된 〈미국인의 성공 The Making of Americans〉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애매해서, 스타인은 "장미는 장미이다는 장미는 장미이다"(A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같은 시구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었다.
대중에게 널리 읽힌 유일한 책은 거트루드 스타인 자신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는 〈앨리스 B. 토클러스의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Alice B. Toklas〉(1933)이었다. 작곡가 버질 톰슨이 오페라로 만든 〈3막 속의 네 성인 Four Saints in Three Acts〉(1934)이 미국에서 공연된 것을 계기로 1934~35년에 당당히 미국 순회강연을 했다. 톰슨은 여성해방론자 수잔 B. 앤소니의 삶을 토대로 한 스타인의 2번째 오페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 The Mother of Us All〉(1947)에도 곡을 붙여주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특히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때에도 살아남아 그녀를 찾아온 젊은 미군들과 친구가 된 뒤로는 파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브루지와 윌리 Brewsie and Willie〉(1946)는 미군들에 대해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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