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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뤼터

다른 표기 언어 Andreas Schlü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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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64(?). 5. 22, 함부르크(?)에서 세례받음
사망 171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독일

요약 독일의 조각가·건축가.

독일 후기 바로크 건축양식의 거장으로 화려한 바로크 양식 조각에 긴장감과 인간적 특성을 불어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생애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단치히에서 훈련을 쌓았으며 바르샤바에서 활동했다(1689~93). 1694년에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 궁정조각가로 임명되어 베를린으로 갔다.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르는 것은 베를린과 프로이센 왕가 호엔촐레른일 것이다.

현존하는 그의 조소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칼리닌그라드(이전의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프리드리히 3세의 동상(1696~97)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성 앞뜰에 있는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청동상인 〈대선제후 The Great Elector〉(1703 완성)이다. 이 두 작품 모두 슐뤼터가, 로마에 있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들과 프랑스 왕궁에 소장된 프랑수아 지라르동의 작품에 정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698~1706년에는 베를린에서 건축공사를 감독하고 병기창, 왕궁 및 1889년에 허물어진 구(舊)우체국 건물을 장식할 조각품을 조달하는 데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 왕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손되었으나 병기창의 아치 이맛돌 조각품, 특히 죽어가는 용사들을 묘사한 연작은 그의 천부적 재능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베를린 왕궁 옆의 모래땅에 세웠던 민트 탑이 무너지자 그는 갑작스럽게 궁정 건축물 감독관직을 물러나야 했으며, 슬픔에 잠겨 말년을 보냈다. 1713년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부름을 받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나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한 채 이듬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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