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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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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500(소지마립간 22) |
국적 | 신라, 한국 |
재위 | 479년~500년 |
요약 신라 제21대 왕이자 자비마립간의 장자로 이름은 소지 또는 비처, 칭호는 마립간. 눌지마립간 계통의 마지막 왕으로 어려서부터 스스로 겸손하고 공손하여 사람들이 모두 심복했다고 하며 재위 기간 동안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공격에 서로 구원군을 파견했으며 가야와도 화친했다. 자비마립간 시기에 추진된 도시계획정비를 실시하여 관도를 수리하고 수도에 시장을 열었다. 아들이 없어 지증왕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신라의 제21대 왕. 비처왕(毗處王)이라고도 한다. 자비마립간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김씨로 서불한 미사흔의 딸이며, 비(妃)는 이벌찬 내숙(乃宿)의 딸로 선혜부인(善兮夫人)이다. 어려서 효행이 있었으며 스스로 겸손하고 공손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심복했다고 한다.
481년 비열성(比烈城, 지금의 함남 안변), 483, 488년에는 일선(一善, 지금의 경북 선산), 500년에는 날이(捺已, 지금의 경북 영주) 등 활발히 지방을 순행했다.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와 왜가 신라의 국경을 자주 침공했고, 고구려의 공격에 대해 백제 또는 가야와 힘을 합쳐 이를 격퇴했다. 그리하여 493년 백제 동성왕이 혼인을 청하자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보내어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고, 고구려의 공격을 받을 때는 서로 구원군을 파견했다. 또한 가야와도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한편 자비마립간 때부터 추진된 도시계획정비의 일환으로 487년 처음으로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여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했으며, 490년에는 처음으로 수도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자를 유통시켰다.
1989년 영일냉수리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의 발견과 함께, 정치적 사건으로 인하여 지증마립간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유폐되어 죽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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