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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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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626. 6. 19, 일본 야마토[大和] |
국적 | 일본 |
요약 일본 고대의 호족 가문인 소가 씨[蘇我氏]의 수장.
강력한 모노노베 씨[物部氏]와 나카토미 씨[中臣氏] 일족을 무너뜨려 소가 씨는 명실공히 최고의 권세를 누리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우마코는 일본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으며, 그의 영향력으로 중국 문화와 중국식 관료·행정 제도의 도입이 촉진되었다.
6~7세기에 일본에 불교가 들어오자 모노노베 씨와 나카토미 씨는 이에 반대했다.
반면 소가 씨는 불교를 지지했는데, 이 일족은 불교가 다른 대씨족들의 힘을 약화시켜 소가 씨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왕실이 다시 권위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씨족들간의 알력은 570년 우마코가 소가 씨 수장으로서 대신의 지위에 오를 때까지 거의 50년 동안 지속되었다. 우마코는 덴노의 허가를 얻어 584년 백제에서 전래된 석불상을 본존으로 하여 저택 옆에 불전을 지었다고 하며, 일본 최초의 니승(尼僧) 3명을 득도시켰다. 이무렵 전염병이 돌자 사람들은 우마코의 절에 있는 불상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그 사이에 덴노가 죽자 모노노베 씨는 자신들이 뽑은 왕자를 덴노 자리에 앉히고자 한 반면 우마코는 소가 씨 출신의 어머니를 둔 한 왕자를 덴노로 삼으려고 했다.
내부 권력투쟁과 종교분쟁이 뒤얽혔다. 소가 씨는 587년 결정적인 전투에서 모노노베 씨를 섬멸했다. 우마코는 자신이 선택한 왕자를 스슌[崇峻] 덴노로 세웠는데, 이는 곧 일본에서 불교가 발흥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마코는 곧 덴노를 암살하고 선임 덴노의 미망인이자 자신의 조카딸인 스이코[推古]를 덴노로 앉혔다.
여자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한 것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난 파란이었다. 우마코는 또 소가 씨의 피가 섞이고 소가 씨의 여자와 결혼한 다른 조카 쇼토쿠[聖德] 세자를 스이코의 섭정으로 선임했다. 쇼토쿠는 우마코의 찬성을 얻어 중국의 승려·학자·예술가·공예가를 일본에 초청했으며, 중국의 관료제를 본떠 정부기구를 재편성함으로써 잘 정비된 중앙행정기구를 확립하고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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