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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87, 프랑스 루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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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3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극동함대사령관.
1844년 극동함대에 배속되었다. 일찍이 1839년(헌종 5) 앵베르(Imbert)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과 천주교도들이 살해된 기해사옥이 있었는데, 극동진출을 꾀하던 프랑스 정부는 이를 구실로 조선 정부에 무력시위를 행하여 조선의 문호개방을 강요하도록 훈령을 내렸다.
이에 1846년 조선인 신학생 최양업(崔良業)을 안내자로 삼아 군함 3척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 외연도 앞바다에 침입해 문책서한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도민들이 서한의 접수를 완강하게 거부하자, 다음해 군함을 파견해 회답을 받으러 올 것이라는 통고와 함께 서한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러한 프랑스 함대의 무력시위는 조선 정부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는데 이때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이 살해되었다.
세실은 1847년 회답을 받는다는 구실로 2척의 군함과 600여 명의 군인을 파견해 무력으로 조선을 문호개방시키려 했으나, 군함이 전라도 고군산열도에서 좌초되면서 실패했다. 1849년 주영대사로 임명되었고, 1853년 원로원 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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