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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이

다른 표기 언어 Southwestern I , 西南夷

요약 중국 고대 서남지역의 소수민족에 대한 총칭.

BC 3세기부터 AD 5세기까지 지금의 윈난 성[雲南省], 구이저우 성[貴州省], 간쑤 성[甘肅省] 남부, 쓰촨 성[西川省] 서남부 일대에 분포되어 살았다.

전국시대에 진(秦)나라가 서남지역에 파(巴)·촉(蜀)·한중(漢中)의 3군(郡)을 두었다.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부터 후한(後漢)초까지 계속 이 지역을 지배하며 건위(健爲)·장가·월수(越雟)·문산(汶山)·심려(沈黎)·무도(武都)·익주(益州)·영창(永昌) 등의 8군을 두었다.

이 지역의 거주민은 저강·백월(百越)·백복(白濮) 등의 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윈난 성 중부와 동북부에는 북(僰)·전(滇)·미막(靡莫)·노침(勞浸)·수(叟) 등이 있었으며, 윈난 성 서부 일대에는 수(雟)·곤명(昆明)·사유(斯楡)·동사(桐師)·수당·애뢰(哀牢) 등, 윈난 성 동남부와 구이저우 성 서부 일대에는 야량(夜郞)·구정(句町)·누와(漏臥)·차란(且蘭) 등, 윈난 성 북부와 쓰촨 성 서남부 일대에는 공도·두(陡)·작도·마사(摩沙) 등, 쓰촨 성 서북부와 간쑤 성 남부에는 염방·백마(白馬) 등이 있었다.

서남이 중에는 저강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북족은 서남이 중에서 정치·경제·문화의 발전수준이 가장 높아 한족(漢族) 수준에 가까웠다. 쓰촨 성과 윈난 성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으로는 공북·서북(西僰)·전북이 있었다. 한대(漢代) 초기 변방민족의 부족국가였던 전국의 주민은 북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제방을 쌓은 지역에서 정착생활을 했고 농업이 발달했다.

이 지역 안에는 또 노침·미막·수(叟)가 사이사이에 섞여 살았다. 수인은 곧 은·주대의 촉인(蜀人)으로서 월수군(지금의 시창[西昌] 일대)의 주요거주민이었다. 사유는 곧 수(叟)·수(雟)로서 접유와 동사(지금의 바오산[保山]) 사이에 흩어져 살았다. 수(雟)와 곤명은 유목에 종사했다. 월수군과 동사에 설치된 심려군(지금의 쓰촨 성 한위안[漢源])은 작족의 거주지였다.

이들 서남이 중에 저강족들은 나중에 서로 융합하여 근대 시노티베트어족 티베트미얀마어군의 언어를 쓰는 각 민족의 선조가 되었다.

백월과 백복은 윈난 성 남부·동남부·서남부에 분포되어 살았다. 한의 무제(武帝)가 야랑(지금의 구이저우 성 서부·북부 및 윈난·쓰촨 두 성의 인접지역)에 설치한 장가군은 월족(越族)이 모여살던 곳이다. 한대 초기에 장가군의 거주민은 요(僚)라고 했다. 복수 유역의 거주민이었던 구료(鳩僚)는 전한초의 전월이다. 후한 때인 69년(永平 12)에 영창군(지금의 다리·바오산·린창[臨滄]·시솽반나[西雙版納]·더훙[德宏] 등의 지역)을 두었는데 구복(鳩濮)은 이미 민복·복(濮) 등의 부족과 섞여 살고 있었다.

서남이의 백월과 백복은 근대 시노티베트어족 좡둥어군[壯侗語群]과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몬크메르어군의 언어를 쓰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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