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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2. 2. 1, 캐나다 퀘벡 콤프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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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3. 7. 25, 퀘벡 |
국적 | 캐나다 |
요약 캐나다의 법률가·정치가.
1948~57년 자유당 총리를 지내면서 국민화합과 개혁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1905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1914년 퀘벡 주 라발대학교의 법학교수로 부임했다. 1941년 W. L. 매켄지 킹 총리의 요청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42년 자유당 소속으로 퀘벡 동부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의석을 지켰고 킹 내각에서 법무장관·검찰총장·외무장관(1945년 직무대행으로 있다가 1946년 정식 취임)을 역임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연합(UN)회의에 캐나다 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했고 1946~47년 런던과 뉴욕에서 개최된 UN 총회에 캐나다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생 로랑은 1948년 주위의 설득으로 자유당 총재에 올랐고 매켄지 킹에 이어 총리가 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뉴펀드랜드를 편입시키고 6·25전쟁(1950~53)과 수에즈 사태(1956)에 대한 UN의 개입을 지지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연방을 이탈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또한 지역간 세입을 균등화하고, 사회보장과 대학교육을 확대했으며, 예술과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국민화합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1949년과 1953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자유당은 1957년 총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며, 생 로랑 자신은 재선되었지만 은퇴를 선언하고 1958년 야당 지도자인 레스터 B. 피어슨에게 총리직을 물려주었다. 1960년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법조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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