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상궁

다른 표기 언어 尙宮

요약 궁관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로 중궁을 인도하는 총책임을 맡았다. 〈고려사〉 백관지에 내직으로 상궁이 등장하고, 1031년 3월에 한씨를 상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상궁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내명부 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상궁은 궁관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궁내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다. 상궁의 신분은 대체로 양인이었으며, 원칙적으로 내관과 구분되어 있으나 왕과 동침하게 되면 내관으로 승격했다. 나인이 된 뒤 15년이 지나면 상궁으로 승격되었는데, 4~5세 때 입궁했어도 35세 이후에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직책에 따라 이름을 달리해서 불렀는데, 제조상궁(큰방상궁)·부제조상궁·대령상궁·보모상궁·시녀상궁·감찰상궁 등이 있었다.

상궁(尙宮)

하루 동안 시간을 되돌려 왕과 궁궐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행사중, 과거 상궁들이 마당을 청소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궁관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로 중궁(中宮:왕비)을 인도하는 총책임을 맡았다. 상궁제도는 중국 수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당·금·명나라 때까지 지속되었다가 청나라 때에 이르러 폐지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 백관지에 내직(內職)으로 상궁이 등장하고, 1031년(현종 22) 3월에 한씨를 상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상궁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내명부 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상궁은 궁관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궁내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다. 내명부는 크게 내관과 궁관으로 구분되는데, 〈경국대전〉의 기록에 의하면, 내관은 정1품의 빈(嬪)에서 종4품의 숙원(淑媛)에 이르는 여관으로서 왕의 측실이고, 궁관은 정5품의 상궁에서 종9품의 주변궁(奏變宮)에 이르는 여관으로서 그 칭호에 따라 직책이 나누어진다.

내명부 제도는 1428년(세종 10)에 정1품의 빈에서 정7품의 전정(典正)에 이르는 여관의 제 및 직분을 상정한 것이 그 근간이 되었으며, 여기에 약간의 보완 작업을 거쳐 〈경국대전〉에 이르러서 법제화되었다.상궁의 신분은 대체로 양인이었으며, 원칙적으로 내관과 구분되어 있으나 왕과 동침하게 되면 내관으로 승격했다. 나인이 된 뒤 15년이 지나면 상궁으로 승격되었는데, 가장 빠른 4~5세 때 입궁했어도 35세 이후에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의 후궁이 되면 20대라도 상궁이 될 수 있었고, 그다음부터는 왕의 곁에 있기만 하면 되었다.

직책에 따라 이름을 달리해서 불렀는데, 제조상궁(提調尙宮:큰방상궁)·부제조상궁(副提調尙宮:阿里庫尙宮)·대령상궁(待令尙宮:至密尙宮)·보모상궁(保姆尙宮)·시녀상궁(侍女尙宮)·감찰상궁 등이 있었다.→ 내명부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조선

조선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상궁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