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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6. 1. 27(구력 1. 15), 러시아 스파스우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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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9. 5. 10(구력 4. 28), 상트페테르부르크 |
국적 | 러시아 |
요약
러시아의 소설가·풍자작가.
필명은 N. Shchedrin.
급진주의적 성향을 지녔다.
어릴 때 민감한 소년이었던 살티코프는 어머니가 농부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것에 깊은 충격을 받아 훗날 이것을 자신의 주요작품인 〈포셰혼스카야의 옛 시절 Poshekhon-skaya starina〉(1887~89)에 기술했다. 1838년 고급관리 양성소인 차르스코예셀로의 귀족학교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자작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관료주의 정권에 격렬하게 반대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혁명 서클에 가담했으며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와도 만났다.
1847년 급진적인 잡지 〈소브레멘니크 Sovremennik〉와 〈조국의 기록 Otechestvennye zapiski〉의 평론가로서 문필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작품 〈복잡한 사건 Zaputannoye delo〉(1848)에서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를 호의적으로 표현했다가 뱌카로 유배당해 그곳의 지방관청에서 일했다.
1855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뒤 첫번째 성공작 〈현(縣)의 스케치 Gubernskiye ocherki〉(1856~57)를 발표해 뱌카의 관리들을 풍자했다. 1857년에는 러시아 상인들을 다룬 그의 유일한 희극 〈파주히나의 죽음 Smert Pazukhina〉(1893 초연)을 집필했다.
1858년부터는 랴잔과 트베리의 부지사로 근무하다가 펜자·툴라·랴잔에서 차례로 세무부장을 지냈고 1862년에 공직에서 은퇴해 문학에 전념했다. 그는 〈소브레멘니크〉의 편집을 맡았고 급진주의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와 공동으로 〈조국의 기록〉의 편집자로 일하다가 네크라소프가 죽자(1878) 편집장이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러시아 고급관리들을 통렬히 풍자한 〈한 도시의 이야기 Istoriya odnogo goroda〉(1869~70)·〈횡포한 관리와 그 마누라들 Pompadury i pompadurshi〉(1863~74) 등이 있다. 마지막 작품으로는 어느 지주 가문의 몰락을 추적한 〈골로블리요프 일가 Gospoda Golovlyovy〉(1876), 신랄한 사회 논평 〈동화들 Skazki〉(1880~85)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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