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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26. 5. 27, 헤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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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50. 11. 6, 네덜란드 알다르 |
국적 | 오라녜 |
요약
오라녜의 군주, 나사우 백작.
(영). William Ⅱ.
1647년부터 네덜란드 6개 주의 스타드호우데르(총독)와 총사령관직을 역임했으며,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벌어진 중요한 권력투쟁의 중심인물이었다.
오라녜 공 프레데리크 헨드리크의 아들인 그는 1630년부터 시행된 일련의 법률들에 의해 부친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관직에 대한 계승권을 보장받았다. 1641년 5월 12일 영국 왕 찰스 1세의 큰딸인 메리 스튜어트(1631~60)와 결혼했다. 1647년 3월에 부친이 죽자 오라녜 공의 지위를 계승했으며 프리슬란트를 제외한 모든 주의 총독직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사령관 겸 해군제독이 되었다.
1648년초 네덜란드의 독립을 위해 스페인과 벌인 80년전쟁을 종식하는 뮌스터 평화조약이 빌렘의 분노에 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맺어졌다. 그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야심과 군사적 포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프랑스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스페인령 네덜란드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재개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처남인 찰스 2세에게 지원을 보내면서 찰스가 영국 왕위에 복귀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빌렘의 크나큰 야심 때문에 전쟁이 야기되는 것을 우려한 홀란트 의회는 1650년 6월 4일 의회에서 급료를 받던 병사들 가운데 일부를 해산했다. 그러자 빌렘은 스타텐 헤네랄(전국회의)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당시 전국회의는 홀란트의 영향력이 커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빌렘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7월 30일 빌렘은 홀란트 의회의 유력인사 6명을 투옥했으며 자신의 군대에게 암스테르담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암스테르담을 장악하려던 시도는 실패했으나 홀란트 의회가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그뒤 빌렘은 자신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대에 직면했으며 자신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기 전 천연두를 앓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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