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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금의 강원도(북한) 안변지방에 두었던 신라의 주.
원래는 고구려의 비열홀군이었으나 556년(진흥왕 17)에 이곳을 장악하면서 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두었다.
당시의 주는 군사령관인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주둔하는 주요거점지역이었다. 따라서 창녕진흥왕순수비(561)에는 비열홀에 파견된 군주가 비리성군주로 나온다.
그후 568년(진흥왕 29)에 주의 치소를 비리성에서 달홀로 옮겼다. 이해에 진흥왕은 직접 함경도 동해안까지 순행하여 마운령과 황초령에 순수비를 남겼다. 668년(문무왕 8)에 신라가 고구려 공격에 나섰을 때 우수주를 폐하고 다시 비열홀주를 설치했다.
이는 중요한 군단의 이동을 뜻하는데, 고구려 공격군의 편성에 비열도총관·비열성주행군총관 등 주요공격로의 명칭이 붙은 사령관이 나타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후 673년(문무왕 13)에 다시 우수주를 설치하고 비열홀주를 없앴다. 그러나 군사적 중요성은 계속 인정되어 효소왕 때는 사방 1,180보에 달하는 성을 쌓기도 했다. 경덕왕 때 삭정군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등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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