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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2. 8. 24, 영국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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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6. 5. 20, 이탈리아 라팔로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만화가·작가.
본명은 Henry Maximilian Beerbohm.
기교를 많이 부린 풍자만화와 풍자문은 당대의 유명인사와 사교계 인사들의 가식이나 우둔함을 대개는 악의 없이 포착한 점에서 독특하다. G.B. 쇼는 그를 가리켜 '누구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맥스'라고 불렀다.
배우 겸 연출자인 허버트 비어봄 트리 경의 이복동생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사교계의 분위기에 익숙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머튼 칼리지 재학시절에 재기넘치는 수필들을 유명한 문예지 〈옐로 북 The Yellow Book〉에 발표했다.
1895년에는 비어봄 트리 극단의 홍보담당자로서 미국을 여행했다. 1896년 첫 문집 〈맥스 비어봄 작품집 The Works of Max Beerbohm〉과 첫 풍자만화집 〈스물 다섯 신사의 인물풍자화 Caricatures of Twenty-five Gentlemen〉를 펴냈다. 1898년에는 쇼의 뒤를 이어 〈새터데이 리뷰 Saturday Review〉 지의 연극평론가가 되었다. 유쾌한 우화 〈행복한 위선자 The Happy Hypocrite〉는 1897년, 유일한 장편소설 로서 옥스퍼드대학 생활을 풍자적으로 그린 〈줄라이카 돕슨 Zuleika Dobson〉은 1911년에 발표되었다. 〈성탄절 화환 The Christmas Garland〉(1912)은 헨리 제임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작가들의 문체의 결함을 자세히 묘사한 성탄절 이야기 모음이다. 단편집 〈일곱 사람 Seven Men〉(1919)이 걸작으로 꼽힌다.
1910년 미국 태생 영국의 여배우 플로렌스 칸과 결혼하여 이탈리아의 라팔로에 정착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 귀국한 기간을 빼고는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비어봄은 빅토리아 시대 말기와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 문학계·예술계·사교계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일화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화술이 매우 뛰어나 유명인사들이 줄지어 라팔로로 그를 찾아왔다. 정곡을 찌르는 풍자만화를 그리긴 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세련된 비판이었으며, 그 대상들의 미움은 거의 받지 않았다.
영국 왕실의 여러 세대를 주된 풍자 대상으로 삼았는데도 1939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그가 거침없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2가지는 영국 제국주의(거드름 피우는 존 불이라는 인물로 의인화)와 R.키플링이었다. 그는 풍자작가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1951년에 아내가 죽자 비서 겸 동료인 엘리자베스 융만과 동거하다가 죽기 몇 주 전 그녀와 재혼했다. 메리 M. 레이포와 칼 벡슨이 공동편집한 〈맥스와 윌 Max and Will : Max Beerbohm and William Rothenstein, Their Friendship and Letters〉이 1975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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