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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

다른 표기 언어 飛擊震天雷

요약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만든 최초의 시한폭탄. 유성룡의 <징비록>과 훈련도감에서 발간한 <융원필비>에 기록되어 있다. 약선을 발화장치로 이용한 중국의 것과는 달리, 목곡이라는 별도의 장치를 발화장치로 썼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목곡 안에는 원하는 폭발시간에 맞게 감겨진 도화선이 들어가 있었다. 대표적인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860호이다. 2018년 11월, 고창에서 사용되지 않은 비격진천뢰 11발이 발굴되었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선조 때 사용된 비격진천뢰와 중완구

ⓒ Kang Byeong Kee/위키피디아 | CC BY 3.0

개요

조선 선조 때 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 이장손(李長孫)이 처음으로 만든 일종의 시한폭탄. 임진왜란 때 큰 효력을 발휘했다. 비격진천뢰의 사용에 대한 기록은 유성룡이 쓴 〈징비록 懲毖錄〉에 처음 보인다. 이 책에서는 비격진천뢰에 대해, "이는 예전에 없었다. 군기시의 화기장 이장손이란 자가 있어 처음으로 진천뢰를 만들어 대완구(大碗口)로써 그것을 쏘았다. 능히 400보까지 날아가고 땅에 떨어지면 얼마 후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라고 썼다. 비격진천뢰에 대한 더욱 상세한 내용은 1813년(순조 13) 훈련도감에서 발간한 〈융원필비 戎垣必備〉에 보이며, 이를 통해 비격진천뢰의 특징을 알 수 있다.

특징

비격진천뢰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화기는 중국의 금·명에도 있었지만, 이들의 발화장치는 모두 비격진천뢰와 달랐다. 즉 약선(藥線)을 발화장치로 이용한 중국의 화기와 달리, 비격진천뢰는 목곡(木谷)이라 하는 나선형으로 된 별도의 장치를 발화장치로 썼다. 목곡에는 원하는 폭발시간에 맞게 빨리 폭발시키려면 10바퀴, 늦게 폭발시키려면 15바퀴 등의 도화선이 감겨져 탄환 안에 들어가 있으며, 그 끝가닥이 진천뢰의 완구에 별도로 하나 더 설치해 놓은 화문(火門) 바깥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이같은 별도의 발화장치 때문에 비격진천뢰의 완구 화문은 다른 화포보다 하나 더 많은 2개였다. 하나는 진천뢰의 도화선용으로, 다른 하나는 발사 화약의 점화용으로 이용되었다. 비격진천뢰의 발화장치의 독특함에 대하여 일찍이 일본인 아리우마[有馬成甫]는 "이 발화장치는 매우 교묘한 것으로 이것이 조선인의 창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화공술로서의 획기적인 일대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화기의 역사에서 비격진천뢰가 차지하는 위치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현황

대표적인 유물은 보물 제860호로 지정된 비격진천뢰로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름 21cm, 둘레 68cm, 약혈지름 6.2cm, 구경 5.2cm이다. 그밖에도 1981년 전라남도 장성군 석머리에서 발굴된 것이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1986년 경상남도 하동군 고하리에서 출토된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리고 1987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출토된 것의 파편이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8년 11월 15일 전라북도 고창의 무장현 관아에서 사용되지 않은 비격진천뢰 11발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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