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만년에는 소련의 간첩으로 활동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 시절에 가이 버제스가 이끄는 반정부 청년단체에 가입하면서 버제스의 영향을 받고 소련의 첩보활동과 관계를 맺었다. 밖으로 드러난 그의 공적 활동은 뛰어난 것이었다. 1937년부터 수십 편의 학술논문과 여러 저서를 발표하여 영국의 미술사를 확립했으며, 17세기 회화 특히 니콜라스 푸생의 권위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 군정보국인 MI-5에 근무하면서 소련에 비밀 정보를 넘겼고, 동료 첩자들에게 영국의 첩보활동을 알림으로써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했다.

1945년 국왕(후에 여왕) 소유 회화의 감정관에 임명되었고, 1947년 미술사의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관인 코톨드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출간된 주요저서로는 〈프랑스의 예술과 건축, 1500~1700 Art and Architecture in France, 1500~1700〉(1953)·〈니콜라스 푸생 Nicolas Poussin〉(1966~67) 등이 있다. 적극적인 첩보활동은 1945년에 중단한 것으로 보였지만 소련 첩자와의 접촉은 계속 유지했으며, 특히 1951년에는 버제스와 도널드 매클린의 영국 탈출을 도왔다. 영국의 소련첩자 킴 필비가 소련으로 탈주한 뒤인 1964년 영국당국의 소환을 받고 자신과 접촉하던 소련 연락망을 자백했다. 그러나 그가 공직에서 물러난 7년 후인 1979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과거가 세상에 밝혀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추적을 받아오던 간첩망 내 '제4의 사나이'임이 밝혀지면서 비난이 집중되자 1956년에 수여된 기사작위를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