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472경 |
---|---|
사망 | 1534. 1. 24, 프랑스 생제르맹데프레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유력한 가톨릭 종교개혁자.
종교개혁 초기의 프랑스 교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인물이었다. 샤를 8세의 고문인 브리소네(1445~1514)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성직자의 길을 택해 생말로의 주교, 랭스의 대주교, 나르본의 대주교, 추기경이었다.
브리소네는 로데브의 주교(1489), 생제르맹데프레의 대수도원장(1507), 모의 주교가 되었다(1516). 1511년에 피사 공의회에 참석했고, 1516년에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지시로 볼로냐 협약을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로마와 협상을 벌였다. 그가 모 교구에서 개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애 오라토리오회에 소속된 이탈리아의 일부 주교들, 특히 베로나의 주교 기안 마테오 기베르티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브리소네는 교구 곳곳을 찾아다니며 성체와 성모 마리아에게 헌신하도록 독려하고, 강론과 주교관저에서 인쇄한 소책자들을 통해 신앙부흥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또한 그는 모 교구의 복음주의자 집단을 이끌었는데, 이 집단에는 자크 르페브르 데타플, 제라르 루셀, 기욤 파렐, 조도쿠스 클리크토브, 프랑수아 바타블, 마샬 마주리에가 있었다. 이 집단은 인본주의를 토대로 성서, 특히 바울로의 편지들을 그리스도교 교리의 주요원천으로 삼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루터교에 대해 자신과 다른 태도를 보이자 브리소네는 그들을 단죄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브리소네는 이단 혐의를 받아 파리 의회에 2번이나 출두해야했다. 복음주의자 집단은 1525년에 결국 흩어졌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종교인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