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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3. 9. 26,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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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91. 1. 30,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급진주의자·무신론자.
볼테르와 토머스 페인 계열의 자유사상가. 19세기 후반에 개인의 자유를 주창한 인물로 명성을 떨쳤다.
가난한 법원 서기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군에서 근무했고(1850~53) 아버지의 직업을 잠시 이어받은 뒤 우상파괴주의자로 자칭하면서 반종교 강연자가 되었다.
1860년 이른바 신성모독과 폭동교사 혐의로 기소된(1868~69) 정기간행물 〈내셔널 리포머 National Reformer〉의 편집장 자리를 맡았다. 1874~85년경 수많은 비정통 교리를 옹호한 애니 베전트와 가깝게 사귀었다. 1876년 미국의 의사 찰스 놀턴이 만든 산아제한 팜플렛 〈프루츠 오브 필로서피 Fruits of Philosophy〉를 펴낸 브리스틀출판사가 외설작품을 팔았다는 이유로 가벼운 형을 받았다.
브래들로와 베전트는 자기들의 자유 이념을 옹호하기 위해 그 책을 1877년 런던에서 재발행했고 매우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바람에 훨씬 더 심한 기소를 당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기소는 기술적 난점 때문에 파기되었다. 1880년 급진주의자로서 출마하여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회의 종교 선서를 직접 하는 대신 긍정만 하는 것으로 허용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5년 이상 의석에 앉을 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3차례 당선되었고 나중에는 종교 선서를 하겠다고 제의했으나 거부당했으며, 1886년 1월 겨우 허락을 받고 의석에 앉았다.
그즈음에 여론은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었지만, 브래들로 자신은 사회주의에 반대하고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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