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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5. 8. 29, 미국 버지니아 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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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7. 4. 29, 테네시 낙스빌 |
국적 | 미국 |
요약 남북전쟁 전 미국 남부의 마지막 친(親)연방주의 신문 편집인이며, 재건시대 초기에 테네시 주지사를 지낸 인물.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버지니아에서 테네시 동부로 이주했다. 11세 때 고아가 되어 친척 집에서 자랐으며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독서를 했고 1826년에는 감리교 목사가 되었다.
10여 년 동안 순회 전도사로 일했고, 1838년부터 오랫동안 〈테네시 휘그 Tennessee Whig〉(1838)·〈존스버러 휘그와 독립 Jonesboro Whig and Independent〉(1839~49)·〈낙스빌 휘그 Knoxville Whig〉(1849~69, 1875~77) 등의 신문 편집을 맡았다. 그는 북부 연방정부를 거침없이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남부의 연방탈퇴를 계속 비난했다. 이 때문에 남부연합 정부는 〈낙스빌 휘그〉를 탄압했고 1861년 브라운로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인쇄기와 활자가 파괴됨으로써 남부의 마지막 친연방주의 신문은 명맥이 끊겼다. 남부연합의 육군장관인 벤저민은 브라운로를 북부로 추방했다. 북부로 가서는 장티푸스 때문에 잃었던 건강을 되찾았으며, 성공적인 강연활동을 했다. 또 〈연방탈퇴의 기원·발전·쇠퇴에 관한 개요 : 반역도들 사이에서 벌인 사적인 모험담 Sketches of the Rise, Progress, and Decline of Secession : With a Narrative of Personal Adventure Among the Rebels〉(1862)이라는 책을 썼다.
1863년 북군이 테네시 동부를 장악하자 브라운로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민간정부를 재건하는 일을 도왔다. 1865년 테네시 주지사로 선출된 그는 분리주의자들을 처벌하기로 마음먹고 연방에 대항해 싸웠던 모든 사람들의 공민권(公民權)을 박탈할 것을 주장했다. 또 당시에 새로 조직된 큐 클럭스 클랜(KKK)을 분쇄하기 위해 1,600명의 주(州)수비대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는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절대적인 지지 속에 주지사에 재선되었고, 주지사 재선 임기말에 미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875년 낙스빌로 돌아간 그는 1869년에 팔았던 〈휘그 Whig〉지를 다시 인수했으며, 그뒤 죽기 직전까지 그 신문의 편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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