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불교음악

다른 표기 언어 佛敎音樂

요약 불교의 법회나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 승려가 포교나 교화를 위해 사용하는 음악 및 일반 신자가 신앙을 표현하거나 고양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악.

'인도의 노래'라는 뜻에서 범패(梵唄 brahman bhan)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또 종교성이 약하고 오락성이 강한 음악도 불교행사에 쓰이는 경우에는 불교음악에 포함한다.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종교활동에 있어서 음악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여러 가지로 활용했고, 육성하고자 노력해왔다. 곧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불교의식이 발전되었고, 그와 함께 음악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종교와 음악과의 관계는, 종교활동에 음악을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는 이슬람교와 비교해볼 때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불교의 포용력과 관대함은 교리뿐 아니라 의식이나 음악의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음악은 민족에 따라 적합하게 변형되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각 민족 고유의 언어로 의식을 행하는 것은 물론, 불교사상과는 관계가 없는 각 민족 고유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결과 불교가 분포하는 지역이 광대한 만큼 매우 다종다양한 불교음악이 생기게 되었다. 불교음악은 성악·기악은 물론 무용·연극과 함께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밀교의 의식, 특히 무드라(mudra:의지나 감정을 표현하는 손가락의 자세)나 진언(眞言)과 같이 시대와 지역이 달라져도 놀랄 정도로 변화가 적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불교음악은 너무 다양해서 불교음악 전반에 대해 공통적인 성격을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기 불교에서는 종교활동에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인도에서 일찍이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힌두교의 교리와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음악적 요소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러면서 불교음악의 발전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대 인도의 지식인 계급인 바라문들이 학습해야 할 5가지 학문인 '오명'(五明 pāñca vidyā) 가운데 성명(聲明 śābda-vidyā)이라고 하는 부문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의 성명은 음악이 아니라 음운에 관한 학문을 가리켰겠지만, 동방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변화·발전하여 오늘날의 불교음악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불교음악을 '쇼묘'[聲明]라고 부르고 있다.

인도에서 초기의 불교음악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BC 268~232 재위) 때나, 쿠샤나 왕조의 카니시카 왕(AD 140~170 재위) 때 불교의식의 형태가 정비되고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8세기경의 불교미술 자료 중에는 음악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조각과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불교 발생지 인도에서 불교는 곧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그곳의 불교음악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인도의 불교는 간다라 지방으로부터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는데, 그때 음악도 함께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불교 전파의 길목에 있었던 각 지역에는 불교음악의 연주에 대한 그림들이 동굴벽화에 남아 있어서, 그 지역들에서 각기 독특한 불교음악 문화가 발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 들어온 불교음악은 고도로 예술음악화되는 동시에 중국화되었다. 오늘날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쇼묘의 악보로 추정하건대, 중국의 범패에는 산스크리트 가사를 한자로 음역한 것과 중국어로 의역한 것이 있어서, 각기 다른 선율로 연주되었던 것 같다. 중국불교에서는 그밖에 연악(宴樂)·기악(伎樂)도 공양음악으로 받아들이고, 서아시아 계통의 음악도 포용하여 규모가 크고 화려한 불교음악을 성립시켰다. 그 대체적 내용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쇠퇴했고 오늘날에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에 전승되고 있는 불교음악과 문헌자료로 그 양상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8세기경에 이미 범패가 전래되어 있었는데, 특히 9세기초에 진감대사(眞鑒大師)는 당나라에 가서 당풍의 범패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범패는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에 계속하여 성행했음은 물론이고, 척불숭유(斥佛崇儒)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여전히 성행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아 많은 곡들이 사라졌고 1973년 범패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7년 영산재로 명칭이 변경·지정되어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불교음악에는 범패뿐 아니라 화청(和請) 및 〈회심곡 回心曲〉과 같이 민중에게 친숙한 민속적 음악에 교리를 사설로 하여 부르는 음악이 있다. 지금은 불교음악으로 새롭게 '찬불가'도 만들어져서 점차 불교음악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한국의 범패는 중복(重複 melismatic:한 글자에 여러 음을 지니는 특성)적이고 장인(長引:길게 끄는 것)과 굴곡(屈曲:가락의 진행)이 심한 인도음악의 특성을 계속해서 전승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범패보다는 티베트의 범패와 유사하다.

한국의 범패는 일본의 불교음악인 쇼묘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7세기경 불교를 받아들인 티베트에서는 종교음악의 면에서도 매우 독특한 양식을 형성해왔다. 그 독특성은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교음악과 티베트 고유의 종교음악이 융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도의 불교와 불교음악은 동남 아시아 각지로도 전파되어 그곳의 각 민족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8세기경에 건립된 자바의 보로부두르에 있는 조각에서는 인도 계통의 각종 악기들이 보이고 있어서 당시에 이미 인도의 불교음악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문화에 불교적 요소가 상당히 있다고 하더라도, 그외에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요소도 혼재하고 있으며 각 민족 고유의 요소들도 섞여 있어서, 그 전체를 불교음악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적당치 않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불교음악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