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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군사통일회

다른 표기 언어 北京軍士統一會

요약 1921년 각 독립운동단체들이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한 독립운동단체들의 대표자회의.

3·1운동 후 국내외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독립군단체들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간도출병과 경신참변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큰 시련에 부딪히면서 각 무장독립단체들의 공동대처와 통일이 시급하게 요구되었다. 그러나 만주의 독립군부대를 명목상 통괄한다는 상해임시정부는 외교독립노선을 지향하여 만주의 무장독립군 단체들에 대해 실질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여기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강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 결성에 참여했던 박용만·신채호·신숙 등이 각지의 무장독립단체들을 통일하고, 이를 기반으로 임시정부를 개편하기 위한 회의를 1921년 4월 21일 베이징에서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조선국민회, 간도국민회, 서간도군정서, 국내노동회, 국내통일당, 노령국민회의, 하와이 독립단 등 만주·노령·중국 및 아메리카 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의 대표자들이 참가했다.

회의에서는 러시아로 퇴각한 무장부대들이 후일 국내로 진출할 때 행동을 같이 할 것, 만주에 산재해 있는 독립군 부대들을 게릴라 부대로 재편하여 국경지대에서 무장유격투쟁을 전개할 것 등을 결의했다. 또 독립군 부대의 지휘통솔권에 대해서는 기존 상하이 임시정부의 통솔권을 부인하고, 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해 새로운 정부 수립을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국민대표대회 준비위원으로 박용만·신숙·남공선 등을 뽑고, 이를 선전하기 위해 신채호를 주간으로 주간지 〈대동 大同〉을 발행했다. 북경군사통일회의의 결성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교노선에 반발하던 각지의 독립단체들의 호응을 얻어 상하이에서는 박은식·안창호 등이, 만주에서는 김동삼·여준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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