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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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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4. 6. 11, 체코슬로바키아 플제니
사망 1959. 8. 9, 프라하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요약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작곡가, 극작가, 연극·영화 감독.

외국인들에게는 무대 효과를 위해 다양한 예술 형태와 기술을 채택한 절충주의적 무대 연출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특출한 성악가였으므로 어려서부터 자연히 음악교육을 받았다. 아직 학생이던 19세 때 그의 6편의 오페라 중 첫번째 작품이자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희곡을 토대로 한 〈알라딘과 팔로미데스 Alladine and Pallomides〉(1923)를 완성했다. 프라하 음악학교에서 요제프 푀르스터의 지도를 받으며 작곡수업을 계속했다.

1927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전통에 매이지 않은 여러 카바레, 음악 그룹과 함께 활동했다.

그 가운데는 합창 시낭송을 특기로 하는 전위적 앙상블 '보이스 밴드'도 있었는데, 보이스 밴드는 1928년에 이탈리아를 순회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재즈와 미국 흑인들의 춤 리듬 및 러시아 현대음악을 포함하는 다양한 음악적 전통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 경험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29년 그는 각종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1년 계약으로 '프라하 모던 스튜디오'의 문예자문직을 받아들였고 그뒤 브르노와 올로모츠에 있는 극장에서 연출을 맡았다. 연극계에서의 수습기를 마치고 1933년 프라하로 돌아와 자신의 극장 'D34'를 열었고 이 극장(극장의 이름은 해당 연도의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 해마다 바뀜) 덕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객석은 겨우 383석이었고 무대의 너비는 6.1m, 깊이는 3.65m밖에 안 되었지만 D34부터 시작해 해마다 이름이 바뀐 이 극장에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유럽 현대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몰리에르·푸슈킨·괴테·도스토예프스키·보마르셰 등의 고전을 개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 상연작품들은 춤·영화·노래·실황연주·연기·영사·간판, 축음기를 이용한 녹음, 합창·낭송·무대장치 등을 결합시킨 것으로 에르빈 피스카토르와 N. P. 아키모프의 멀티미디어 작품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감독들이 모든 요소를 단순히 나열한 반면 그는 미술 담당자인 미로슬라프 코릴의 도움으로 모든 요소를 완전히 하나로 융합했다.

나치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1941~45) 뒤 건강이 나빠졌지만 전쟁이 끝나자 프라하로 돌아와 D46을 다시 열고 언론과 정치 방면으로 활동의 폭을 넓혔으며 1948년 의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D51은 '육군 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대령으로 임관했다. 1954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인민예술가로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은 300여 곡의 노래, 무수한 시와 1편의 소설 외에도 수용소 시절의 회고록이 〈그곳에서 온 8명 Eight from There〉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부리안의 D34는 오늘날 요제프 스보보다의 작품이 대표하는 체코슬로바키아 연극의 전통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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