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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 10. 30, 프랑스 몽토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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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9. 10. 1,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조각가.
힘이 넘치고 표면에 심한 잔주름이 있으며 고대 그리스 아케익기(期)의 미술과 로마네스크 미술에서처럼 단순한 장식을 새긴 작품으로 20세기초의 조각에 새로운 활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툴루즈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1885년 파리로 갔다. 장바티스트 카르포, 쥘르 달루 등과 함께 공부한 뒤, 그의 예술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 오귀스트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1900년 〈아폴론의 두상 Head of Apollo〉이라는 중요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의 위엄에 찬 모습과 널찍한 면들은 초기 고전기(期)의 그리스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1910년 살롱전에서 〈활 쏘는 헤라클레스 Héraklès archer〉로 첫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작품은 자세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근육이 더 과장되어 있지만 역시 고대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주제로 조각을 여러 점 만들었다. 또한 같은 해에 전신상(全身像) 〈작업 중의 로댕 Rodin at Work〉(파리의 앙투안 부르델 미술관)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의 머리 부분은 로마의 산피에트로인빈콜리 교회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Moses〉를 본뜬 것이다. 1912년 샹젤리제 극장을 위해 매우 촘촘하고 평평한 양식의 부조를 제작했다. 그 주제는 춤추는 뮤즈들이 딸린 〈아폴론과 그의 사색 Apollo and His Thought〉이었다. 1914년 또 하나의 걸작 〈죽어가는 켄타우로스 Dying Centaur〉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이교(異敎)의 패배를 나타내려 했다. 조각가로서 로댕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작업실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로 바꿔 유명한 선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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