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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 3. 23, 영국 런던 클래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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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5. 1. 1, 웨스트민스터 |
국적 | 영국 |
요약 추기경,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교회와 국가를 위해서 옳다고 판단한 정책들은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밀고 나간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지도자이다.
파리 생쉴피스대학교와 루뱅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884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889년 서리 주 워너시에 있는 세인트존스 신학교 교장이 되었다. 1895년 몬시뇰, 1896년 사우스워크의 보좌주교, 1903년에는 웨스트민스터 대주교가 되었다.
1908년 성체행렬 문제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이는 성체대회 동안 여러 거리에서 갖기로 계획한 성체행렬을 당국이 사회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하자, 대성당의 개랑(開廊)에서 그 행사를 가짐으로써 금지령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1911년 추기경이 된 뒤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랍인들의 권리를 옹호해 주었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육권을 지지했으며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던 폭력사태를 단죄했고 총파업을 비판했다. 또한 모더니스트들을 질책했고 추기경 메르시에, 핼리팩스 경, 성공회교도들이 시작한 교파간 대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몇 차례 열린 '말린'회의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대학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가톨릭교도들이 따로 교단 학교를 세우기보다는 국립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으며, 로마 가톨릭 정당을 세우기보다는 기존 정당들에 가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E. J. 올드메도가 쓴 〈추기경 프랜시스 본 Francis, Cardinal Bourne〉(2권, 1940, 1944)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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