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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사에서 1812년 미·영전쟁 이후 20년 동안 전개되었던 미국 정치생활의 민주화 시대.
종종 앤드루 잭슨 및 그가 이끈 민주당과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 공직에 대한 권위주의가 줄어들고 대중이 정부의 운영과 통제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또한 투표권에 대한 제약도 줄어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부의 여러 주들은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들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부의 많은 새로운 주들이 백인 남성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주헌법을 제정하고 연방에 가입함에 따라 동부의 주들은 1812년 전쟁 후 몇 년 안에 재산에 따른 자격제한을 없앴다(→ 잭슨 민주주의).
동부 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통치할 사회적·경제적 지도자들을 선출해왔었는데 이제 변경지방에서도 주민들 스스로가 지도자를 선출하게 됨으로써 정부의 권위주의가 사라졌다. 1829년 잭슨이 대통령직에 취임할 당시 백악관조차도 더이상 신성불가침한 장소가 아니었다. 신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선서일에 집무실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는데 군중들이 집무실에 들어차자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잭슨은 제퍼슨이 말했던 '타고난 귀족'을 불신했으며 일반상식만이 공직을 담당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충실한 정당활동에 대한 대가로 연방정부의 공직을 제공했으며(엽관제), 공직임명권은 민주당원들이 활용하는 강력한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공무원의 숙련된 능력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 이동을 통하여 가능한 한 많은 성실한 근무자가 행정부의 직책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주의 차원에서도 예전에 임명직이었던 많은 공직이 선출직으로 바뀌었다. 1832년 잭슨이 재선되었을 때 대통령선거인단 선출권을 주의회에서 국민의 손으로 이양시키지 못한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뿐이었다. 또한 1832년에 와서 대통령후보자를 선출하는 코커스 제도 대신에 각 정당들의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가 등장한 사실 역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국민이 자신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시대에는 정치참여에 대한 제한조치 철폐 이상의 결과가 나타났다. 즉 여러 계층의 국민이(대부분의 흑인과 여성은 제외) 정치제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장지향적인 농업 및 공장제도가 자급자족적인 농민들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일반 유권자들은 공공정책의 주요쟁점(예를 들면 관세·금융 정책, 국내개량사업 등)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더 커졌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권자들의 투표율도 현저하게 올라갔다. 1828년 선거 때는 1824년보다 투표율이 2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1840년 '통나무집' 선거에서는 백인 성인남자의 78%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잘 조직된 양대정당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유권자들의 보다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이로써 보통사람의 시대는 절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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