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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40. 2. 16, 이탈리아 피에몬테 살루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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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13. 11. 29, 프랑스 제국 타로 파르마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의 인쇄업자.
몇 종의 현대 활자체를 고안했으며 그중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활자체는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보도니는 소년시절에 집을 떠나 로마에 가서 로마 교황청의 선교 본부인 포교회의 출판부에서 도제로 일했다. 1768년 그는 파르마 대공의 인쇄소인 스탐페리아레알레의 경영을 맡도록 요청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궁중에서 쓰이는 이탈리아어·그리스어·라틴어로 씌여진 책들과 인쇄물을 제작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장식적인 세공이 되어 있는 재래식 활자체를 사용했으나 점차 프랑스의 인쇄업자인 피에르 디도의 활자조판 이론에 동조하게 되어 1787년에는 그 자신이 고안한, 장식이 거의 없는 현대적인 활자체로 인쇄물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보도니'라는 이름을 얻은 활자체는 1790년 처음으로 선을 보였는데, 이 시기에 보도니가 제작한 많은 책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788년에 출판된 그의 책 〈활자체 목록 Manuale tipografico〉이다. 이 책은 러시아·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철자들의 활자견본들과 더불어 291개의 로마체와 이탤릭체 활자체들을 모아놓은 2절판 책이었으며, 그 재판은 그가 죽은 뒤인 1818년 그의 부인에 의해 출판되었다.
1790년경부터 보도니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저명한 여행객들이 직접 그의 인쇄소를 방문했고, 수집가들은 그의 책을 찾아다니면서 구했다. 대공은 그에게 인쇄소를 더 크게 늘려주었으며 더 많은 독립성을 제공했다. 그는 더 이상 대공의 사업에만 자신의 일을 한정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출판한 책들은 비록 원문의 정확성보다는 활자체의 미려함과 우수성으로 더 유명했으나, 많은 중요 문헌들을 인쇄해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1791년과 1793년에 각각 간행한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과 1818년 출간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의 세련된 판본들을 들 수 있다.
말년에 보도니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졌다. 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치하를 받았던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과도 서신을 교환했고, 파르마 시(市)로부터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는 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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