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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4. 11. 24, 우크라이나 폴타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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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3. 4. 23, 예루살렘(이스라엘) |
국적 | 이스라엘 |
요약
이스라엘의 제2대 대통령(1952~63)을 역임한 팔레스타인 지역 초기의 시온주의 지도자.
본명은 Isaac Shimshelevich.
그는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제도 기반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어린시절부터 시온주의자였던 벤 즈비는 1905년 러시아 '포알레 지온'(Poale Zion)을 결성하는 데 협조했다. 이 단체는 시온주의 단체로서 후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선례를 남겼으며 1907년 포알레 지온 세계연합으로 나아갔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1908년 유대인 정착민의 자위조직인 '하 소머'(ha-Shomer)를 결성하는 데 일조했다. 1909년 그는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에 최초의 히브리어 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15년 터키인에 의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추방당한 벤 즈비는 미국을 여행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후에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던 데이비드 벤 구리온, 시온주의의 선구적 청년조직인 '헤할루츠'(Heḥalutz)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과 함께 독일인과 터키인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유대인 연맹'(Jewish Legion)을 창립했다. 1918년 유대인 연맹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돌아온 그는 2년 후 이스라엘의 주요노동조직이 되었던 노동총연합인 '히스타드루트'(Histadrut)의 창립을 도왔다. 그는 1920~29년 히스타드루트 사무국 일원으로 일했으며 1929년 벤 구리온과 함께 마파이당을 창립했는데, 이 당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주도적인 정치정당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을 영국이 점령하는 동안(1920~48) 유대인 공동체의 90%를 대표하고 있었던 유대인 국민회의인 '바아드 레우미'(Va'ad Le'umi)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벤 즈비는 1931~44년에 국민회의 의장직을 역임했으며 1944~49년에 대표를 맡았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에 서명했으며 다음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2년 대통령이 된 뒤 죽을 때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또한 중동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저명한 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1948년 유대인 중동공동체연구소(지금의 벤 즈비 연구소)를 설립해 1960년까지 소장을 지냈다. 그는 유대인의 역사에 관한 〈추방과 되찾음 The Exiled and The Redeemed〉(1958)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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