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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만년의 대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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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중요한 작품들 중에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2개의 소나타 작품102와 피아노 소나타 B♭ 장조 작품106(후일 '해머클라비어'라 불리게 됨)을 빼놓을 수 없다. 9번 교향곡의 작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루돌프 대공이 올뮈츠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작곡을 중지하고 대공의 서품식을 위해 대규모의 〈장엄 미사 Missa Solemnis〉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작곡은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고, 결국 예전에 요제프 2세를 위한 칸타타 작곡과 마찬가지로 제 시간에 맞추어 작곡하는 데 실패했다. 서품식이 지난 3년 뒤인 1823년이 되어서야 베토벤은 이 작품을 완성해 대주교에게 보냈다.

한편 1820~22년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3개를 작곡했고, 교향곡 작곡을 위해 잡다한 스케치 악보를 작성했다. 그러는 동안 작곡가 안톤 디아벨리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루돌프 대공 등에게 변주곡의 주제를 보냈는데, 그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후에 이 주제로 33개의 변주로 된 〈디아벨리 변주곡〉(1823)을 완성했다. 9번 교향곡도 제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해서 이듬해인 1824년 완성되어 〈장엄 미사〉의 몇 악장 등과 함께 초연되었다. 이 교향곡의 초연에 직접 지휘를 맡았는데, 귓병으로 인해 연주가 끝난 뒤 쏟아져나온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도 듣지 못하다가 독창자들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워주자 비로소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9번 교향곡은 대규모 작품으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1823년에 마지막으로 니콜라스 갈리친 공작으로부터 50더컷(ducat)과 함께 3개의 현악 4중주를 의뢰받았다. 그는 이 의뢰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1825년이 되어서야 이중 첫번째로 현악 4중주 E♭장조 작품127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예정된 것보다 2곡이나 더 많은 4곡의 현악4중주를 더 작곡했다. 카를이 자살을 기도한 1826년 마지막으로 작곡한 현악4중주 B♭장조 작품130을 완성했다.

여름 동안 생존한 형제 니콜라우스 요한의 집에서 보내고 빈으로 돌아오던 길에 결핵에 걸려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고,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간경변증으로 사망했다. 3일 뒤에 치러진 장례식에는 2만여 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운구자 중에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후멜이 포함되어 있었고, 슈베르트는 횃불을 들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극작가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추도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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