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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 명대 정통연간(正統年間:1436~49)에 원(元)의 사천대(司天臺)가 있던 장소 부근에 세운 관상대.
오늘날 개수 작업을 거쳐 베이징 천문관의 고대 천문기 진열관이 되어 있다. 베이징의 젠궈먼[建國門] 남서쪽 모퉁이에 있다. 최초에는 관상대 위에 송·원대의 천문기기를 모방해서 만든 혼천의·천구의(天球儀)·간의를 설치하고, 아래에는 해시계·물시계를 설치해놓았다.
청대 강희(康熙) 8~12년(1669~73) 6개의 대형 동의(銅儀), 즉 천체의(天體儀)·적도경위의(赤道經緯儀)·황도경위의·지평경의(地平經儀)·상한의(象限儀)·육분의(六分儀)를 제조해 모두 관상대 위에 안치했다. 1715년(강희 54) 관상대 위에 대형 지평경위의(地平經緯儀) 1개를 더 안치했다. 기기의 수효가 많아짐에 따라 동쪽 성벽을 이용해 관상대의 폭을 5m쯤 넓혔다. 1744년(건륭 9) 더 나은 천구의를 설계·제조해 기형무진의(璣衡撫辰儀)라 명명하고 역시 관상대 위에 안치했다. 1900년에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침입했을 때,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관상대 위에 있던 기기들을 약탈해갔다.
이들이 약탈해간 기기들은 1902년과 1921년 2차례에 걸쳐 돌려받았다. 명대에 제조된 기기는 1931년에 난징[南京]으로 옮겨져 쯔진 산[紫金山] 천문대에 진열되었다. 현재 베이징 고관상대에는 청대에 제조된 대형 고(古) 천문기기 8개만이 남아 있다. 이 관상대의 천체 관측의 역사는 500여 년에 이른다. 관상대 건물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기기의 조립 상태도 모두 완전하다. 이 기기들은 형상·장식무늬 및 공예면에서 모두 중국의 전통적인 특징을 구비하고 있으며, 서양 르네상스 시기의 대형 천문기기가 지닌 구조적 특징도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동·서양의 문화 교류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증거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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