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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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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0. 4. 15, 체크 프라하
사망 1943. 10. 12, 미국 뉴욕 뉴로셸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요약 형태심리학이라고도 불리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창시했다. 프라하의 카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법철학과 법정 증언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뒤, 단어연상법을 고안했고 거짓말탐지기를 개발했다. 그뒤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구조들을 지각하는 데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능이 낮은 아동도 어떤 문제의 전체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나중에 게슈탈트 심리학의 바탕이 될 개념들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대부분 지각에 관한 것이었지만 게슈탈트 학파는 곧 심리학의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혔고, 어떤 분야에서나 구조화한 통일체 내부의 구성요소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역동적 분석을 강조했으며, 전체는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는 개념을 기본 견해로 삼았다.

쿠르트 코프카, 볼프강 쾰러와 더불어 게슈탈트 심리학을 창시했다.

형태심리학이라고도 부르는 게슈탈트 심리학은 심리적 현상을 여러 개의 구성요소로 나누기보다는 하나의 구조적 통일체로 검토하려 했다(형태심리학).

청소년시절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교항곡과 실내악을 작곡해, 음악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으나 1900년 프라하의 카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곧 법철학과 법정 증언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 음악심리학으로 유명한 카를 슈툼프에게서 심리학을 배우기 위해 프라하를 떠나 베를린의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으로 갔다.

1904년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박사논문의 일부로 단어연상법을 고안했고, 증언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를 개발했다. 그뒤 프라하·베를린·빈에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복잡하고 모호한 구조들을 지각하는 데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능이 낮은 아동도 어떤 문제의 전체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나중에 게슈탈트 심리학의 바탕이 될 개념들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베르트하이머는 1910년 기차여행을 하다가 문득 운동지각 현상에 흥미를 느껴,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들러 장난감 스트로보스코프(급속히 회전하거나 진동하는 물체를 정지상태로 포착해 관찰하는 장치)를 샀다.

그는 어두운 방 안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2개의 빛이 짧은 간격을 두고 빠른 속도로 깜박거리면 마치 하나의 빛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처럼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서 움직임을 느끼는 '파이 현상'은 게슈탈트 심리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볼프강 쾰러와 쿠르트 코프카라는 2명의 조수와 함께 파이 현상을 연구했고 이 세 사람은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이 인간행동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단편적 접근방식이 부적절하다고 확신하고, 새로운 게슈탈트 학파를 결성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 이르는 그의 초기 연구기간에 베르트하이머는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교수로 일했고, 1916~29년에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 강사로 일했다. 1921년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심리학 연구 Psychologische Forschung〉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결국 게슈탈트 운동의 주요기관지가 되었다.

1929년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심리학교수로 돌아가 사회심리학과 실험심리학 연구를 지도했다.

그는 당시의 교육이 전통적인 논리학과 연상법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문제를 분류하고 재조직하는 방법처럼 문제를 구조적 통일체로 다루는 문제해결과정은 논리학에서는 인식되지 않지만 인간 사고의 중요한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과 관련된 조직체의 '프라그난츠'(Pragnanz:정확성)라는 베르트하이머 개념은 사물을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하면, 사고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베르트하이머에 따르면 어떤 대상이 참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개별 감각이나 지각이 아니라 경험의 전체구조이다.

베르트하이머의 연구는 대부분 지각에 관한 것이었지만 게슈탈트 학파는 곧 심리학의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혔고, 어떤 분야에서나 구조화한 통일체 내부의 구성요소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역동적 분석을 강조했으며, 전체는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는 개념을 기본 견해로 삼았다.

베르트하이머는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기 직전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탈출해 뉴욕 시에 있는 '신(新)사회연구학교'의 교수로 생애를 마쳤다. 말년에는 심리학과 사회윤리학 문제에 전념했다. 그의 사상과 이론을 담고 있는 〈생산적 사고 Productive Thinking〉는 그가 죽은 뒤인 1945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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