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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 3. 16, 이탈리아 파르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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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8. 11. 26, 이탈리아 로마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마지막 황제>로 9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초기에는 연극을 올리거나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었으나, 점차 인간의 내면 세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작품들을 감독했다. 2007년에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에로틱한 내용으로 전세계적인 파문을 불러일으킨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Ultimo tango a Parigi)〉(1972)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의 삶을 그린 <마지막 황제(L'ultimo imperatore)>(1987)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초기 생애
베루톨루치는 1941년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안락하고 이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는데, 시인이자 인류학자, 미술사 교사, 영화평론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시절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를 따라 영화구경을 자주 다닌 결과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어린이들에 관한 그의 첫 단편영화 2편은 15세 때 만든 것이었다.
영화계 입문
그가 처음으로 펴낸 책 〈미스테리를 찾아서 (In cerca del mistero)〉(1962)는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프레미오 비아레지오 상을 받았다. 그후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파솔리니 감독의 〈아카토네(Accattone)〉(1961)를 함께 제작한 후 로마대학에서의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독자적인 영화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감독한 장편영화 〈죽음의 신(La commare seca)〉(1962)은 로마에서 촬영되었는데 이 영화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감독으로 인정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2번째 영화 〈혁명전야(Prima della rivoluzione)〉(1964) 역시 흥행에는 신통하지 않았으나 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영화제작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감독했으며 줄리안 베크와 그의 리빙 극단과 함께 손잡고 〈고뇌(Agonia)〉·〈사랑과 분노(Amore e rabbia)〉 등을 비롯한 여러 편의 연극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60년대말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뒤에는 영화제작에 정치를 혼합하는 영화제작자들을 거침없이 비난했다. 뒤이은 영화 〈거미의 계략(La strategia del ragno)〉(1970)은 정신분석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내면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한 청년이 지방의 반파시스트 영웅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30년 전 무솔리니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믿어지는 포 계곡 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적 진실은 가끔 그대로 묻어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원숙기의 작품들
영화 〈순응주의자(Il conformista)〉(1970)를 통해 그는 감독으로서 원숙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기존 사회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무능력을 상쇄하려고 애쓰는 젊은 공무원이다. 베르톨루치가 2년 뒤에 만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일반영화에서 금기시되어왔던 수준의 에로티시즘을 그린 영화로 상처한 중년 남성과 젊은 여배우와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당시에도 파격적인 성적 표현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2016년에 이 영화에서의 성폭행 장면이 여자주인공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는 고백이 공론화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후의 작품으로는 장대한 스케일의 영화 〈1990년(Novecento)〉(1976), 근친상간을 다룬 내용의 〈루나(Luna)〉(1979), 〈어리석은 남자의 비극(La tragedia di un uomo ridicolo)〉(1981) 등이 있다.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은 <마지막 황제>(1987)이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으며 뒤에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던 선통제 부의의 생애를 그린 영화로,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정부의 허락을 받아 촬영한 첫번째 영화이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로 1987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녹음상, 의상디자인상, 미술상, 작곡상 등 9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말년
그는 말년에도 작품 생활을 계속하여 <리틀 부다>(1993), <몽상가들>(2003), <미 앤 유>(2012) 등을 감독했으며, 2007년에는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인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는 중증의 허리 디스크로 노년 내내 고생을 했으며 2003년부터는 휠체어 생활을 했고, 말년에는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2018년 11월 2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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