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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67. 8. 6(구력 7. 27), 스위스 바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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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48. 1. 1, 바젤 |
국적 | 스위스 |
요약 스위스의 수학자.
베르누이가(家)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에 연구한 새로운 미적분학을 곡선의 측정, 미분방정식, 역학문제에 응용했다. 약사의 아들인 그는 의학을 공부해 1694년 바젤에서 근육수축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691~92년 그는 미적분학에 대한 2권의 책을 썼는데, 훗날에도 출판되지는 않았다. 1692년 수학적 발견들을 베르누이 덕으로 돌렸던 수학자 기욤 프랑수아 앙투안 드 로피탈에게 미적분학을 가르쳤다. 1695~1705년 그는 네덜란드 그로닝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그의 형 야코프가 죽게 되자 바젤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그가 수학에 끼친 공헌은 형보다 더 컸다. 그는 물체가 일정한 속력으로 떨어지는 등시곡선(等時曲線 isochrone)과 시계 제작에 중요한 토토크론(tautochrone) 같은 곡선의 길이와 면적을 결정하는 데 미적분학을 응용했고, 미분방정식론·항해수학·광학에도 기여했다. 또한 파리에 있는 로피탈에게 0 대 0의 비율로 분명히 표시되는 극한문제를 푸는 방법과 법칙을 알렸다.
이것이 1696년 로피탈의 유명한 교과서 〈무한소의 해석 Analyse des infiniment〉에 실렸기 때문에 부정형에 대한 로피탈 법칙이라 불렀다.
베르누이 형제는 종종 같은 문제를 연구했으며 갈등도 있었다. 가장 심한 논쟁으로는 입자가 중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가정할 때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이는 궤도의 방정식을 찾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원래 갈릴레오가 연구했었다.
1697년 형 야코프가 이 문제의 해를 구하면 상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도전을 받아들인 요한 베르누이는 굴러가는 바퀴 위의 한 점이 움직이는 경로인 사이클로이드를 해로 제안했다. 동시에 이 곡선과 밀도가 변하는 층을 통과하는, 광선에 의한 경로와의 관계를 지적했다. 이 해를 의심한 야코프가 자신의 해를 제안해 길고 신랄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새로운 분야인 변분법이 나오게 되었다.
정열적인 우정과 강렬한 분노를 지닌 요한은 미적분학을 고안한 아이작 뉴턴과의 논쟁에서 G. W. 라이프니츠의 대의명분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1742년에 그의 적분학 책이, 곧이어 미분학 책이 출판되었다. 말년에는 주로 역학의 원리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업적은 〈요한 베르누이 저작집 Opera Johannis Bernoullii〉(4권, 1742)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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