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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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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6 |
국적 | 프랑스 |
요약 조선에서 활동한 프랑스 신부.
한국명은 장경일(張敬一). 프랑스 망(Mans) 교구에서 태어났다. 1831년에 신부가 되었고,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으로 1840년 프랑스를 출발해 통킹·만주 등지에서 선교생활을 했다.
1853년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Ferreol) 주교가 병으로 죽자 제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철종 7) 상하이로부터 입국했다. 뮈텔(Mutel) 주교, 다벨뤼(Daveluy) 부주교, 리델(Ridel) 신부 등과 함께 선교에 힘쓰는 한편, 교황에게 조선교회의 특수성을 역설해 교황청의 비준을 거치지 않는 신부임명권을 얻어냈다.
그에 따라 고종이 즉위한 1864년에는 신도가 거의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때 러시아의 남진을 프랑스의 힘을 빌려 저지하자는 천주교 신도 남종삼(南鍾三)의 건의를 대원군이 받아들이자, 대원군과 접촉을 모색했으나 때를 놓쳐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이후 대원군이 양반유생들의 천주교 금압(禁壓) 요구를 받아들여 1866년 정월 천주교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한 병인사옥이 발생하자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베르뇌는 대원군으로부터 교회를 철수하고 출국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부하고 그해 3월 새남터에서 동료 신부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해 집전한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식 때 성인품에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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