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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3. 6. 30, 잉글랜드 서머싯 클리프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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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49. 1. 26, 스위스 바젤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시인.
극시 〈죽음의 만담집 Death's Jest-Book:or, The Fool's Tragedy〉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과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해부학과 인간 영혼에 대한 아버지의 면밀한 관찰과 사색에서 영향을 받아 죽음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그뒤 줄곧 이 죽음의 문제가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지배했다.
유명한 퍼블릭 스쿨 차터하우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여기서 희곡에 대한 열정과 18세기 고딕풍의 로맨스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다. 1820년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이곳에서 중요한 첫 작품 〈신부의 비극 The Bride's Tragedy〉(1822)을 썼는데, 이것은 한 대학생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1825년 해부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괴팅겐으로 건너가 〈죽음의 만담집〉을 계속해서 썼으나 초판을 읽은 친구들의 권유로 개정판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의 시적 재능은 더이상 발전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평생을 이 작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완성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그의 사후인 1850년에 출간되었다. 스스로 '화려한 고딕풍'의 전형으로 평가한 〈죽음의 만담집〉은 그가 고딕풍 소재를 사용하여 죽음과 불멸의 문제를 논의해보고자 한 작품이다.
대학 당국과 마찰이 있은 뒤 괴팅겐을 떠나 뷔르츠부르크로 이주하여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때부터 급진적인 정치운동에 관여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되자 독일을 떠나 취리히로 갔으나, 영시(英詩) 창작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라져갔다. 1840년 정치적 문제로 추측되는 이유 때문에 스위스로부터 도망쳐야만 했으며, 그후부터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았다.
1846~47년 마지막으로 영국을 방문한 후 2년 뒤에 자살했다. 그의 전기는 1935년 H. W. 도너가 쓴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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