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779. 9. 2, 프랑스 몽펠리에 |
---|---|
사망 | 1840. 8. 27, 노르웨이 크리스티아니아 |
국적 | 노르웨이 |
요약 노르웨이의 애국자·정치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말기에 노르웨이-스웨덴 연방(1814~1905)을 앞장서서 주장했고 노르웨이-스웨덴 연합왕국에서 첫 노르웨이인 총독을 지냈다.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서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이 해체되어가고 있을 때, 영국의 해상봉쇄 때문에 덴마크로부터의 긴요한 용역과 보급이 차단되어 곤란을 겪자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구성한 특별위원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때 식량공급을 훌륭히 해낸 일이 가장 주목할 만한 그의 공적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베델은 노르웨이의 이익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은 스웨덴과의 연합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킬 조약(1814. 1)에 따라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했을 때 베델은 스웨덴인과의 연합을 지지하는 연방파를 이끌었다. 그러나 다수파인 독립파는 킬 조약을 거부하고 노르웨이의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삼았다. 베델 일파는 에이츠볼에서 열린 1814년 4월 10일의 제헌의회에서 다수파에 합류했고 베델 자신은 15인위원회에 참여해 헌법을 기초했다. 1814년 여름 스웨덴에 대한 군인봉기가 실패로 끝나고 타협의 결과 양국간에 직접 통합이 이루어졌으며, 이 연합은 1905년까지 유지되었다.
연합왕국이 결성된 뒤 베델은 노르웨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일하면서 항상 연합왕국 내에서 노르웨이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애썼다. 1836년 연합 내에서 노르웨이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르웨이 총독이 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