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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45. 2. 10,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브라운슈바이크(지금의 독일에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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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26. 10. 3, 하노버 힐데스하임 근처 반텔른(지금의 독일에 있음) |
국적 | 러시아 |
요약
나폴레옹 전쟁 때 러시아 군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장군.
본명은 Levin August Gottlieb (Theophil) von Bennigsen.
하노버 공국 군대에서 1764년까지 복무하면서 경력을 쌓았고 1773년 영관급 장교로 러시아 군대에 들어가 1774, 1778년 투르크에 맞서 싸웠다.
1787년 대령으로 진급해 폴란드 봉기(1793) 진압에 참여했고 1796년 러시아가 잠시 페르시아를 침공할 때도 참전했다.
황제 파벨 1세(1796~1801 재위)의 정책에 반대해 황제 암살(1801. 3. 23[구력 3. 11]) 음모에 적극 가담했으며 이어 새로운 황제 알렉산드르 1세(1801~25 재위)에게서 리투아니아 총독(1801), 기병대 장군(1802)으로 임명받았다. 러시아가 제3차 대(對) 나폴레옹 동맹에 가담한(1805) 뒤에는 육군 사령관이 되어 프랑스의 공격(1806. 12. 26)에 맞서 푸우투스크(바르샤바 근처)를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며 나폴레옹에게 타격을 준 뒤 아일라우 전투(1807. 2. 8)에서 후퇴했다. 그러나 1807년 6월 14일 프리틀란트 전투에서는 완패했다. 결국 러시아가 프랑스와 틸지트 조약(1807. 7)을 맺은 뒤 은퇴했다.
1812년 프랑스와 전쟁이 재개되자 그는 다시 지휘권을 맡아 보로디노 전투(1812. 9. 7)에서 러시아 중앙부대를 이끌었으며 타루티노에서 프랑스군의 조아섕 뮈라 원수를 격파했다(1812. 10. 18). 그러나 러시아군 최고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과 불화를 빚어 다시 은퇴해야 했다. 1813년 쿠투조프가 죽고 러시아군이 프랑스군을 몰아내 프로이센과 바르샤바 공국까지 추격하게 되자 다시 군대로 소환되었다.
라이프치히 전투(1813. 10. 16~19) 마지막 날에 프랑스군에 치명적 패배를 안겨주었고 그날 저녁 백작작위를 받았다. 그뒤로는 북부 독일에서 프랑스 원수 루이 다부의 군대와 싸웠다. 1818년 완전히 은퇴해 하노버의 힐데스하임 근처 반텔른에 있는 영지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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