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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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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515 |
국적 | 중국 |
요약
중국 남조 제(齊)·양 나라의 유물주의 철학자, 무신론자. 자는 자진(子眞).
(병). Fan Zhen. (웨). Fan Chen.
남향(南鄕) 무음(無陰: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비양[泌陽] 서북쪽) 사람으로, 출신이 미천해 어렵게 공부했으나 경전과 학술에 능통했으며 성품이 곧고 소박했다.
직언과 고상한 담론을 좋아했으며 권력이나 부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의도태수(宜都太守)를 지낼 때 사람들이 신묘(神廟)에 제사지내는 것을 금했다. 평생 동안 2차례 반불교 논쟁을 벌였다. 한번은 남제(南齊) 때 독실한 불교도인 경릉왕 소자량(蕭子良)과 논쟁을 벌인 것이다. 이때 소자량이 궁지에 몰리자 관직으로 범진을 유혹했으나 "주장을 팔아 관직을 취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히며 무신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후 양 무제(武帝) 소연(蕭衍)이 조정대신·귀족·명승 64명을 동원해 범진의 〈신멸론 神滅論〉을 반박하는 75편의 글을 쓰도록 했는데 범진은 날카로운 논조로 이들을 물리쳤다. 이것이 2번째 논쟁이다.
그는 〈신멸론〉에서 최초로 체용(體用)의 범주를 가지고 형신 관계를 밝히고 칼날[刀]과 날카로움[利]을 비유로 들어 신(神)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정함으로써 중국 고대 무신론사상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신멸론〉은 영혼이 불멸하다는 설교를 반박하고 인과응보 관념을 뒤흔드는 등 중국 무신론사상 탁월한 공적을 세웠다. 범진에게는 〈문집 文集〉 15권이 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신멸론〉·〈답조사인 答曹舍人〉은 〈양서 梁書〉·〈홍명집 弘明集〉에 보존되어 전해진다. 엄가균(嚴可均)이 집록한 〈전량문 全梁文〉에 그의 유문 전부가 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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