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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3. 12. 28, 영국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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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6. 1. 9,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신문 소유주.
본명은 Edward Levy. Sir Edward Levy-Lawson, 1st Baronet이라고도 함(1892~1903).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 London Daily Telegraph〉의 사실상의 창간자라 할 수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1855년 그의 아버지 조지프 모지스 레비는 창간된 지 몇 달 안 된 〈데일리 텔레그래프 앤드 쿠리어 Daily Telegraph and Courier〉를 창간자 슬레이 대령으로부터 인수했다. 레비는 아들의 도움에 힘입어 곧 이 신문을 런던 최초의 '페니 페이퍼'(1페니짜리 신문)로 바꾸는 한편 런던 굴지의 신문으로 만들었다.
에드워드 레비(1875년에 큰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이름에 로슨이라는 이름을 덧붙였음)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뒤부터 1903년까지 그 신문사의 소유주 겸 단독경영자로 그 신문사를 관리했다. 이미 1892년에 준남작작위를 받았던 버넘은 1903년에 남작작위를 받게 되자 신문사의 소유권과 경영권 일체를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버넘은 오랫동안 영국 언론계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간신문을 좀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으며, 일간신문을 그날그날 일어난 일만을 따분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다채로운 사건들을 보다 더 흥미로우면서도 읽기 좋은 방식으로 제공해주는 매체로 변형시켰다.
그는 언론에 가해지던 몇 가지 제한을 철폐(1861)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러한 제약조건이 사라진 결과 중산계급에서 상당수의 독자층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언론이 표방하는 대중지향적인 성향을 환영했다. 버넘은 대중적인 일간지란 당대의 정직한 거울이 되어야 하며, 독자들의 정서에 맞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넘의 주도 아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애국적인 일이나 자선사업을 위해 거액의 기금을 조성했으며, 중앙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탐험대를 파견했고, 그날그날의 생생한 화젯거리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을 싣는 등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독자들의 의견을 싣는 이러한 방식은 후에 가서 모든 신문들의 관행이 되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오랫동안 자유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으나 윌리엄 글래스턴 총리의 반터키 정책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했으며, 글래스턴이 아일랜드에 자치를 허용하는 정책을 펴면서부터 결정적으로 자유당과 갈라섰다. 버넘은 대영제국이라는 이상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웨일스 공이며 후에 왕이 된 에드워드 7세는 자주 그의 집을 방문하고는 했다.
버넘은 언론인협회 회장직(1892~93)과 신문기금의 의장직(1908~16) 등을 역임했으며, 1909년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제국언론회의 때는 의장으로서 그 회의를 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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